2025 서울마라톤 후기 (1) - 부상과 회복
1. 23년~24년 겨울
2023년 11월, jtbc 서울 마라톤이 끝나고 나서 나는 복수심에 휩싸였다. 330을 하겠다고 깝쌌지만 고관절과 종아리가 탈탈 털리면서 330 근처에도 못 가고 352가 나왔다. 섭철수(안철수의 PB. 346)도 못하고 울면서 들어옴.. 이제는 진짜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워낙 평이 좋은 잭 대니얼스의 18주 훈련 뭐 그거 기계처럼 따라하겠다고 결심했다.
대회 4일 뒤에 5km로 회복 조깅을 해 줬다. 그리고 좀 뛰다 보니까 오른쪽 고관절이 아직 뻐근하다는 것을 깨달음. 한 10알 쉬기도 하고, 천천히 짧은 거리를 조깅하면서 조심하기를 반복했다. 어떤 날에는 오른쪽 고관절이 아팠고, 어떤 날에는 왼쪽이 아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너무 큰 대미지를 받았고(특히 코로나에서 막 회복한 시기에 장거리 뛰다가 개박살 난 게 컸던 듯),
고관절 상태 때문에 빠른 페이스로 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12월 마일리지는 175km로 얼추 맞추기는 했지만 대부분 그냥 조깅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조깅으로 12월 보내고 나니까 몸 상태는 어느 정도 올라왔고 고관절도 조금은 안정된 것 같다고 느꼈다. 문제는 대회는 어느새 10주 정도밖에 안 남았고, 개박살을 내서 나를 업신여긴 녀석들(없음)에게 복수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완주가 걱정되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완주는 해야 하니까 조깅 거리도 늘리고 장거리를 슬슬 늘려주기로 했다. 그래서 1월 7일에는 25km, 14일에는 28km, 21일에는 30km까지 뛰어 줬다.
빡런도 중간중간 섞어 줘서 템포런 7km도 뛰어 줌.
이쯤 되니까 좀 안정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일리지도 263km나 뛰어 줌. 23 제마 뛸 때 가장 길었던 마일리지가 280km인데 그것보다는 덜하지만, 아무튼 부상의 터널에서 나와서 나름 잘 찍은 마일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2월에도 열심히 훈련했다. 2월 4일에는 마라톤 페이스 20km 지속주를 섞었다. 마라톤 페이스는 515로 잡았는데, 이지런 5km를 섞어서 총 25km였다. 11일에는 30km를 뛰었다. 지금 이렇게 정리해 보니까 이거 훈련 스케줄이 너무 빡셌다. 지난 마라톤에서 완전 무너졌던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30km 이상 장거리를 최대한 많이 뛰겠다는 생각에 무리를 한 것이다. 3주 연속 거리를 늘려가며 장거리를 한 뒤 한 주는 25km를 뛴 건 좋았는데, 이것도 마라톤 페이스로 20km나 뛰었기에 당시의 나에게는 수월한 훈련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다음주 30km를 또 뛰었다. 무친놈 아닌지 ㅋㅋ
그리고 이 날 오른쪽 엉덩이에 경미한 이상을 느꼈다. 이때 나는 스트렝스 트레이닝과 마라톤 훈련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화목토는 트레드밀 러닝과 스트렝스 트레이닝을 하는 날이었고 수금일은 러닝을 하는 날이었다. 고중량 스쿼트를 갈겨 놓고 다음날 30km 장거리를 뛰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ㅋㅋ
그리고 그 다음주. 2월 18일. 이날도 30km LSD가 계획되어 있었다. 일요일에 느꼈던 오른쪽 골반, 엉덩이 부분의 통증이 수요일에 확 올라오는 느낌이라서 주중에 운동을 쉬었다. 그렇다면 일요일에 운동 복귀할 때에는 살살 달래 가면서 조금만 뛰어야 했지만 이때는 걍 일시적인 통증이겠지~ ㅎㅎ 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마라톤 전에 장거리를 최대한 많이 뛰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30km를 뛰기로 했다. 그리고 20km 정도 뛰었을 때 고관절이 아파오고 저리기까지 해서 포기했다...
그리고는 좀 괜찮은 것 같길래 인터벌도 해 보고(실패함), 17km 정도 뛰어 보기도 하고, 다음주에 바로 또 30km LSD 도전했다가 20km에서 어김없이 골반 통증이 느껴져서 좌절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길게 뛰지 않으면서 최대한 회복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20km만 지나면 골반이 아파서 도저히 뛸 수가 없어지는데 42km가 넘는 거리는 어떻게 뛰지..? 한편으로는 아까웠다. 지금까지 훈련한 게 있는데 이걸 못 뛰게 된다고? 2월 훈련도 뛰다 쉬다 뛰다 쉬다 김듬성 의원처럼 뛰다 보니까 마일리지도 오히려 1월보다 못 뛰게 됨.
그래서 결심했다. 대회 한 주 전에 마라톤 페이스로 17km 뛰어 보고, 안 되면 접자고. 워밍업 3km 뛰고 합치면 20km니까 골반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면 끝날 때까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훈련하면서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훈련 강도를 낮추고 있어서 그런가? 마라톤 페이스로 잡은 515라는 페이스로 빨리 올릴 수 있었고, 무척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라톤 페이스 14km 지점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워밍업을 합치면 17km 정도. 정말 회복 같은 소리 하고 있었다 ㅋㅋ 1km 정도 미련으로 뛰다가 그만뒀다. 멈추니까 바람도 산들산들 너무 시원하고, 뛸 때에는 몰랐던 사람들의 대화소리도 들리고, 날씨도 정말 좋았다.
2. 24년 봄~가을
통증을 분석해 보고 몇 가지를 느꼈다. 우선 내가 걸린 건 장경인대 증후군인 것 같았다. 원래 장경인대 증후군은 무릎 바깥쪽에서 많이 시작하지만, 골반쪽부터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통증이 올 때에는 골반쪽이 아프면서 저리기 시작해서, 장경인대 부분을 타고 저린 느낌이 내려왔기 때문에 사실 다른 거라고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봄에 접수해 놨던 대회를 다 포기해야 했다. 느긋하게 웨이트나 하다가 나으면 돌아오기로 했다. 그때에는 제마가 끝나고 충분한 휴식기간을 거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뛰어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나름 몸상태 괜찮았는데 너무 무리하게 뛰어서 그랬던 거지만... 아무튼 ㅋㅋ
4월부터 뛰고 가을 제마를 노리기로 했다. 4월에 러닝 복귀했고, 한 7월쯤 들어가기로 했다. 조급해하지 말고 웨이트나 열심히 하면서 천천히 몸상태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6월 5일이 됐다. 감기에 걸렸다가 복귀하는 날이었는데, 저녁 러닝을 해 주기로 했다. 한 5km 정도 뛰는데 왼쪽 오금쪽이 좀 이상한 것이다. 통증이 상당했다. 이게 뭐지..? 걍 별 거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이거 엄청나게 묵직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6km 뛰고 멈췄다. 서울마라톤을 포기하게 된 통증은 좀 불쾌해도 뛸 수는 있었는데, 이건 아예 뛸 수가 없는 통증이었다. 걍 순간적인 거겠지.. 생각하고 조금 걷다가 다시 뛰었는데, 2km 정도 뛰니까 다시 큰 통증이 올라왔다. 결국 2.5km 뛰고 포기함. 당황스러웠다.
정확히는 이쪽 비골두였다. 비골두 아래 부분이 묵직하게 아팠다... 지금 찾아보니까 근위경비관절 부근 염증이 문제였을 수 있다고 하네..? 암튼 ㅋㅋ 그동안은 한 15km 뛰면 아프고 20km 뛰면 아프고 이런 수준이었는데, 아예 한 5km를 뛸 수 없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별 거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고 일주일 쉬고 다시 뛰었는데, 이번에는 4km만 뛰어도 아파서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렇지 않고, 고중량스쿼트를 해도 아무런 통증이 없는데 딱 러닝만 하면 아파 왔다. 심상치 않아서 3주를 쉬었는데 이번에는 1km만 넘겼더니 아파 왔다. 마라톤을 완주했던 내가 10분도 못 뛰는 사람이 된 것이다 ㅋㅋ
정형외과에 가니까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장경인대 증후군의 연장선상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좀 생각하다가 신경 문제인 것 같다고 반쯤 확신하더니 막 그 얘기를 하다가 안 될 거라고 확신하면서, 뒤꿈치를 땅에 댄 채로 발을 앞으로 들어 보라고 하는 것임. 그래서 너무 쉽게 드니까 당황하면서 아.. 아니었네.. 역시 장경인대 증후군이군~ 이라고 드리프트함.
정형외과에서 대수롭지 않게 보면서, 일상생활할 때 아무렇지 않는다면 한 달 정도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길래 뛰었는데 8월 4일에 1.9km만 뛰고 멈췄다. 8월에 이렇게 통증이 생긴다? 어쩔 수 없이 하반기에 등록해 놓은 달리기 대회 다 취소함. 제마, 서울레이스 모두 이렇게 ㅃㅃ였다.. 24년 동마도 포기, 제마도 포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부상이, 여기 생겼다가 저기 생겼다가 돌아가면서 아프면서 1년 농사를 다 망쳐 버린 것임.
아 이건 심각한데 ㅋㅋ 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희망으로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한의원을 잘 안 믿는 편이긴 한데, 고3 때 승모근 통증 개아픈데 침을 좀 놓으니까 바로 낫는 거 보고 근골격계는 한의원 이 자식들이 제법 하는군~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의원 가더니 여기도 뾰족한 뭐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픈 쪽 이야기를 들어 보더니 비골두에 신경이 지나가는 곳이라고, 신경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자세히는 안 알려줘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허리랑 무릎에 침을 놓고, 부항을 뜨고, 물리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나 허리가 엄청 민감한 편이라 허리에 뭔가를 할 때마다 잉어킹처럼 펄떡펄떡거리게 되는데 그래서 개창피했다(간호사들이 진심으로 위로해 줘서 더 비참했음.. 깨비참처럼).. 하지만 뛸 수 있다면 이 정도 굴욕은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2주? 치료하고 뛰어 보라고 하길래 엥.. 뭐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뛰라고 하지..? 라고 생각하고 뛰었는데 맙소사 ㅋㅋ 뛰어지는 게 아닌가? 이런 동양 의학의 신비 ; 허준 선생님 당신이 옳았습니다 ㅋㅋ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2.4km 지점에서 또 통증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제기랄 ㅋㅋ 이거 걍 진득하게 3개월 쉬었으면 애초에 다 나았을 것 같은데 자꾸 복귀하려고 깝싸서 이렇게 된 건가? 싶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한의원 가서 2.4km 지점 뛰었더니 또 아팠어용... 이라고 하니까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면서 다음주에 또 뛰어 보세용.. 이라고 하길래 또 잉어킹처럼 침이랑 부항이랑 물리치료 맞았다. 그리고 9월 15일에 별 기대 없이 뛰었는데??? 아니???? 5km가 뛰어지는 게 아닌가??? 동양의학 형님들 그동안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ㅋㅋ 허준 선생님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그렇게 회복하고 천천히 거리 늘려가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한의원에서는 신경 문제라고 봤지만 결국 장경인대 증후군이 맞는 것 같았다. 근데 그 주위를 침으로 조져 주고 물리치료도 조져 주고 하면서 염증을 없애 줘서 제대로 뛸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혼자 생각 중임. 뭐가 됐든 러너에게는 한의원이 좀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은 가을 동안은 몸 상태 꾸준히 올렸다. 뛰다가 무릎 안쪽이 좀 안 좋아지기도 해서 세상의 문명을 기원전으로 돌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다행히 심각한 건 아니라서 조금 쉬니까 나아졌다. 거위발건염이 약하게 온 것 같음... 그래서 뛰다 쉬다 하면서 10월 마일리지는 72km로 늘림. 이게 뭐 대단한 거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엄청나게 오랜만에 뛸 수 있는 몸이 된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는 하나의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에메랄드 캐슬 - 발걸음이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