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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 변주영시 2021. 1. 8. 18:12
나는 가끔 내 배를 통과하는 실 같은 뜨거운 알루미늄 같은 거짓말 같은 총알을 실밥같이 남은 상처를 생각한다 나는 관자놀이를 맞은 것처럼 무릎부터 앞으로 넘어지고, 침대처럼 내 볼은 평평하고, 눈을 뜬 채로, 초침이 멈추고,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 아닌 것도 사라지고, 폴리에스터가 젖고, 누군가도 젖고, 어떤 것은 그대로이며 어떤 것은 변하고, 무의미한 일들은 더욱 무의미한 일들이 되고, 이어폰은 여전히 진동하고, 한쪽은 귀지로 막혀 있고, 감정 없는 영국인 탐정처럼 나는 누군가의 흙을 맛보고, 나는 그림처럼 비로소 나는 불쌍해진다. 사람들이 모이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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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세이 2020. 3. 10. 23:18
4~5년 전 쯤에 언론사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도피나 다름없었다. 그때 나는 20대 후반이 되어 가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 했는데 아무것도 잘할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관심 있었던 것이 사회 문제였다. 글 쓰는 것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 블로그도 잘 하지 않지만. 나는 사기업보다는 언론사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사기업에서 잘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으니 제대로 준비를 할 리가 없었다.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을 하면서 준비했는데, 대부분의 날을 신문이나 대충 읽으면서 보냈다. 글도 잘 쓰지 않았다. 어쩌다가 글을 써도, 남들이 내 글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게 두려워서 혼자 검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스터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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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 연어영화 2020. 1. 17. 19:36
* 이 글에는 를 비롯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된 테마는 공포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제국과, 자유를 위해 제국에 저항하는 저항군의 대결이다. 그러나 강력한 제국은 저항군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다. 어떻게 대항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스타워즈 시리즈는 지금까지 전형적인 영웅 설화의 방식으로 답을 내렸다. 드러나는 영웅의 비범한 혈통, 자신의 운명 및 악의 유혹과 맞서 싸우는 영웅,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통한 문제 해결이 바로 그런 것이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는 유혹을 이겨 냈고 프리퀄 시리즈에서는 유혹에 졌다는 차이만 있을 뿐, 이러한 영웅 설화적 구조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였다. 그런데 시퀄 삼부작 중 두 번째 영화였던 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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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 나신덕시 2020. 1. 4. 00:20
에스컬레이터 나신덕 나는 긴 에스컬레이터에서 뒤를 보면 현기증이 난다 사라진 과거가 발판처럼 나를 따라올 때 당장 그 지점으로 낙하해도 내 발판과 손잡이 묻은 지문들 기름 뾰족한 검은 쇠들 그 사이 공간들 먼지처럼 숨어 있는 각질들 섬유들 찰나의 감정들, 움직임들 교차하는 인물들 표정 없이 울고 있는 동상들 눈을 깜빡이던 순간 증발하던 감상들 흐려지던 초점들 그 모든 것이 순간이었음을 이미 한참 위로 전차의 궤도처럼 돌아가는 그들을 (나는 손잡이를 잡을 때 안심한다) 생각하면 발을 떼야 한다 발판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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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위쳐>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영화 2019. 12. 27. 21:52
(* 이 글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가 나왔다. 나는 위쳐 게임을 플레이한 적도 없고 유튜브로 게임 '위쳐 3'의 플레이 영상을 봤을 뿐이지만, '위쳐 3'의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 때문에 나는 이 드라마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엔딩까지 보고 난 후의 내 감상이다. 구성에 대해 는 게롤트(헨리 카빌), 예니퍼(안야 차로트라), 시릴라(프레이아 앨런) 이렇게 세 인물이 겪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야기들의 경계가 확실하지는 않다. 중간중간 게롤트와 예니퍼의 이야기는 겹치기도 하고 파이널 에피소드는 세 인물이 소든에서 교차하는 컨셉이기도 한다. 게롤트와 예니퍼의 이야기는 옴니버스 방식으로 진행되고, 시릴라의 이야기는 띄엄띄엄 시간순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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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 인간의 숙명영화 2019. 12. 19. 23:08
* 이 글에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성공했지만 주위의 모두를 잃고 고독하게 혼자 남아 생각에 잠긴 모습. 마치 갱스터 영화의 전형적인 엔딩 같은 장면을 가 보여 준다. 갱스터 영화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사업 과정에서 악행을 저지르고, 믿을 수 없게 되거나 회사에 피해를 끼친 인물을 제거한다. 그 과정 뒤에 그에게 남은 건 성공과 고독이다. 보통 갱스터 영화에서는 평범하던 사람이 점점 악에 물드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 영화에서 마크(제시 아이젠버그)는 처음부터 개자식이다. 그는 하버드 보안 시스템을 해킹하여 여성 학생의 얼굴을 평가하는 사이트를 만들었음에도 죄책감이 없다. 오히려 해킹에 성공하고 엄청난 관심을 불러 모았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전 여자친구에 대한 성희롱적 글을 블로그에 올려 상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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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의 진실> - 때때로 그들은 우리를 잡아먹는다영화 2019. 12. 16. 00:52
(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 글에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영화감독이 있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올리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으며, 그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 그의 커리어는 한 단계 위로 올라설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집에서 일가족과 함께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은 이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음모론 데이비드 크롤리는 어린 시절 군인을 동경했고, 이에 따라 입대했지만 그가 이라크에서 복무하면서 목격한 것은 부도덕한 전쟁이었다. 거기서 그는 진실이 시민들에게 가려져 있고 시민들이 이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러한 경험은 그가 음모론에 빠지는 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루미나티 같은 존재가 은밀히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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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수민 - 선분들시 2019. 12. 14. 00:56
선분들 모수민 모퉁이를 돌아나는 들어간다 선분들로빌딩의 그림자를 밟으며다세대 주택 사이로도망치는 쥐며느리들 이 길을 좋아했던 적이 없었다내 앙상한 과거 위에 세균처럼 모여 있는기억들이 모션 픽쳐처럼 나를 추적한다견뎌야 돌아갈 수 있다 내 보잘 것 없는 세계로여전히 기어가는 쥐며느리들 나는 가끔 바퀴벌레를 돌로 내리쳤던 일을 생각한다이리저리 튀어오르는 파편 사이로 하얀 속살이 보였다 어쩌다 나에게 이렇게 협소한 세계만이 놓였을까이 선분들을 견디고 나면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어디론가 움직이는 쥐며느리들 나는 몸을 말 줄 모르는 쥐며느리를 말리다가 죽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