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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더믹과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다른 차원의 이야기
    에세이 2022. 2. 24. 00:09

    코로나19에 대해 생각하면 섬뜩할 때가 있다. 전세계의 사망자 숫자를 생각했을 때 거대한 숫자에 압도되기는 하지만, 등줄기가 가려워지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를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조금 더 개인적인 부분과 관련되는 일들이다.

    내가 고등학생인데 지금과 같은 팬더믹이 벌어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일단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스크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체형을 50장 구매하지만, 평면형 마스크가 아까워 재활용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겠지. 근데 팬더믹 상황에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었을 것 같으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다음은 PC 문제이다. 내가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집에 있는 PC의 램이 256메가였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에 국민의정부의 인터넷PC 보급 사업으로 현대멀티캡이라는 업체의 컴퓨터를 90만 얼마 주고 샀을 것이다(그래도 스타크래프트, 창세기전3, 피파2000, 대항해시대4, 롤러코스터 타이쿤 같은 게임은 돌아감). 지금으로 따지면 한 램 4기가에 셀러론 정도의 CPU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그 PC의 CPU도 셀러론이었다. 좀 잘사는 집은 그때 팬티엄으로 삼... 줌은 잘 됐을까? 뭐 대충 돌아갔을 것 같기는 한데 쾌적하게는 아니었겠지. 나중에 PC는 대학생 됐을 때 남매끼리 돈 모아서 피씨방 중고 PC 사서 바꿨나 그랬다.

    그런데 PC는 하나고 남매는 셋이니까, 두 명은 핸드폰을 이용해서 비대면 수업을 받았을까? 일단 나는 수능이 끝나기 전까지 핸드폰이 없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모두가 핸드폰을 갖고 다니고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고2인가 고3이 되니까 반 안에서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두 명 정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 말고 다른 애는 공부하려고 끊은 거였음. 나는? 집 전화(놀랍게도 당시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요금도 못 내서 끊겼는데 자식새끼들 핸드폰 사주고 요금 내주고 할 돈이 어디 있었을까?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이었으면 어떻게든 또 스마트폰 사고 했겠지. 대충 대리점 데려가서 가장 싼 걸로 주세요 하고 뭐.. 갤럭시 A12나 망국의 엘지폰 떨이 이런 걸로 샀을 듯. 근데 그래도 월 2만원 정도는 됐을 텐데.. 그거 삼남매니까 곱하면 6만원.. 이걸 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나라에서 뭐라도 지원해줬으려나? 아무리 그래도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는 어려우니 대충 뭐 어떻게든 됐을 것도 같다. 그럼 그렇다 치고 핸드폰으로 수업을 들을 수는 있었겠다. 이것도 뭐 막 원활하게 되지는 않았겠지.

    근데 문제는 캠이든 핸드폰 카메라든 뒤에 비치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항상 곰팡이가 있는 방에서 살았다. 뭐 수치스러울 수도 있고 부끄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어릴 때 별생각 없이 살아서(대신 커서 생각 많아짐) 대충 이겨냈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생각해 보니 사람이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었겠다 싶다. 뭐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불편하고 이런 건 있었겠지만 대충 어떻게든 됐을 듯.

    내가 고3인데 팬더믹이 터졌다면? 일단 나는 고3 때 방에 책상이 없었다. 누나 방에는 컴퓨터 있었음. 방을 형제 두 명이 같이 쓰는데 방이 좁아서 책상을 둘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 비대면 수업을 했다면 대충 작은 밥상 두 개 갖고 어디 장롱 같은 곳에 L자로 기대 앉아서 수업을 들었겠지.. 누나가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한 명은 PC 쓰고. 근데 지금 쓰면서 생각해 보니 PC를 쓰려면 캠이 있어야 하잖아. 그냥 핸드폰으로 썼을 듯. 고정은 어떻게 하지? 다이소에서 거치대 같은 걸 어떻게 차비 아낀 돈으로 주섬주섬 모아 가지고 사서 고정하지 않았을까... 근데 형제가 두 명이니까 한 명은 외투 장롱에 기대고 한 명은 그냥 옷 장롱에 기대야 했을 듯. 뭐 이것도 생각해 보니 대충 해결되는 문제이긴 하다.

    수능 시험은 어떻게 준비했을까? 내가 고3 때에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게 있어서, 집에 책상이 없었던 나도 대충 학교에서는 쾌적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뭐 밤 10시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원래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 중에 신청자 모아서 11시까지 공부하는 반 들어갔었는데 나중에 모의고사에 주력하느라, 또 수행평가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 아니라서 내신 망쳐 가지고 거기 못 들어가게 됨..). 그런데 만약 지금 내가 고3인데 팬더믹이 터졌다. 그러면 또 밥상 같은 데에서 앉아서 공부했겠다. 과연 집중이 잘 되었을까? 스터디카페나 독서실이나 학원 가는 애들처럼은 공부를 못했겠지. 그러면 성적이 많이 떨어졌을 것이고, 당연히 내가 다닌 대학교에 비하면 소위 안 좋다고 평가되는 대학교에 갔을 테고, 지금 누리고 있는 생활 수준보다 조금은 낮은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을 확률이 클 것 같다. 내가 대학교에서 취업 시장에서의 내 가치를 올릴 만한 일들을 할 사람도 아니니까. 사실 머리에 힘 주고 생각하면 대학교가 조금 달라진다고 내 삶이 엄청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데 뭐.. 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파국적 사고인가 뭔가 ㅋㅋ 그런 것이 아닐까.


    대학생 때 팬더믹이 터졌다면 어떻게 됐을지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정도는 안 되는 것 같다. 뭐 수치스러움.. 어쩌고.. 웅앵.. 이런 건 더 강했을지 몰라도 대학교만 가도 알바를 할 수 있으니 솟아날 구멍은 있었을 것 같다. 단 거기서 공부랑 쉽게 병행할 수 있는 도서관 근로장학생 일은 못 했을 듯.

    정리하는 차원에서 두 가지 정도를 말하고 싶다. 첫 번째는 재난 상황의 불평등성이다. 만약 내가 학생 때 팬더믹이 터졌다면 매일매일 당혹감과 수치스러움과 불편함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더라도, 그런 부분을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어른의 책임이 아닌가 싶다.

    남은 하나는 이런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내 삶은 점진적으로 좋아지기만 했다. 이렇게 된 건 기저효과도 물론 있었겠지만, 내가 상대적으로 좋은 교육 인프라를 가졌던 수도권 위성도시에 거주했기 때문에 도서관이 집 옆에 있었던 것과, 비평준화 지역(비교육적인 제도지만)의 수혜를 받아 나름의 ‘유사 좋은 학군 효과’를 받은 거랑, 사교육이 이렇게까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의 끝자락에 운 좋게 불평등한 학벌 구조에 올라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우연과 우연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어떻게 대충 중산층의 소득을 벌게 된 사람이 되었지만, 마찬가지로 우연하게 팬더믹이 잘못된 시기에 터졌으면 크게 미끄러졌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씩 내 삶이 아무렇게나 서 있는 성냥개비들이 위태롭게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성냥탑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실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갔을 거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때때로 이런 일들을 상상할 때 느껴지는 감각은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가까운 것이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에서 언제 어떤 성냥개비가 빠져 삶이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길을 걸어가야겠지. 오늘도 어쩌고가 저쩌고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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