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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룩 업> - 디스토피아의 입구
    영화 2022. 1. 13. 00:37

    (* 이 글에는 영화 <돈 룩 업>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권력이 없는 상황에서, 불합리한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제시해 왔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굽히더라도 체제 안에 들어가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타협하지 말고 선명성을 간직한 채로 체제 밖에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돈 룩 업>에는 '정상인 사람들'이 '비정상인 상황'을 마주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아쉽게도 퇴로도 없다. 6개월 후에 혜성이 날아오면 지구는 멸망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구도는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등의 합리적인 과학자들과 대통령(메릴 스트립)의 대립 구도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종류의 냉소적인 시선을 담은 영화는 풍자의 구도를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현실을 쉽게 만들기 마련이다. 영화에서 비판하는 인물들, 포퓰리스트이며 비상식적인 정치인, 모험적인 소시오패스 IT 기업가 등이 전형적이며 다소 납작하고 뻔하게 그려진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래도 이야기를 말이 되게 만들려고는 한다. 세계가 6개월 후면 멸망한다는 말을 과학자들이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음모론으로 취급하는 것은 별로 현실적이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뭐 나사의 책임자가 음모론이라고 말했다니까 이해할 수 있는 것 등등. 무엇보다 우리는 세계 1짱이 트럼프였던 시절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코로나19를 치료하기 위해 소독제를 인체에 주사하면 어떻냐는 말을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말하는 장면보다 황당하게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대통령은 혜성에 엄청난 자원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첫 번째 요격 기회를 놓쳐 버린다. 혜성을 요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닌데 한 번을 그냥 날려버린 비합리적인 상황에서,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자는 위험천마한 계획 앞에서 과학자들은 두 방향으로 저항한다. 민디로 대표되는 체제 내부에서의 흐름이 하나이고, 디비아스키로 대표되는 체제 외부에서의 흐름이 남은 하나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맛보게 되는 것은 처절한 실패이다. 민디 박사는, 뭐 본인이 타락한 탓도 있긴 하지만, 권력을 쥐고 있는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뚫지 못한다. 온건파의 실패다. 디비아스키도 뚜렷한 수를 내지 못한다. 열심히 사회 운동을 벌이고 대규모 콘서트도 열지만 자기 위안일 뿐이다. 그들이 중국과 러시아, 인도의 성공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사실상 실패를 의미한다. 대중은 설득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왜 대중을 움직이지 못한 걸까? 여론이 압도적으로 쏠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사안이 정파적으로 갈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라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론장을 통해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것이 불가능한 모습을 보여 준다. 영화 중간에 잠깐 지나가듯이 나오는 TV 토론회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혜성에 대한 2:2 토론인데, 한쪽은 과학자 두 명의 전문가 집단인데 반해 한쪽은 왜 혜성에 당신 이름을 붙였죠? 같은 이야기나 묻고 있는 음모론자들인데 단지 의견이 반으로 나뉘었다는 이유로 동등한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 하나가 되자 같은 말은 공허하다. 이는 크리스 에반스가 선글라스를 차고 영화 '완전 초토화'를 홍보하기 위해 등장해서, '룩 업' 진영과 '돈 룩 업' 진영의 화해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위와 아래를 모두 가리키는 화살표의 배지를 차고 나오는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싸우지 말자는 말은 현상을 유지하자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통령 측을 편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실패했는데, 어떡해야 할까? 이 영화는 은근슬쩍 진실의 힘에 대한 희망을 드러낸다. 실제 혜성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 그 '실재'에 압도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대통령 측을 지지해서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실제 디비아스키 혜성의 모습을 보고는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잇다는 것을 깨닫고 비서실장, 즉 대통령의 아들(조나 힐)에게 분노하며 물건을 던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저런 혜성의 모습을 보고도 대통령 측의 말을 계속 믿는 것이 현실적인 모습일 것이다. 실제로 그 장면에서만 속았다며 분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질 뿐, 여론은 뒤집히지 않았고 대통령의 계획은 그대로 실행되었으며 실패했다.

     

     

    이 영화는 트럼프 시대에 사람들이 느꼈던 무력감을 그대로 보여 준다. (대통령이 집무실에 빌 클린턴의 사진이 있긴 했지만, 그걸로만 넘어가기엔 너무 날 것 그대로의 비유였다.) 트럼프가 어떤 비상식적인 일을 저질러도 그의 지지율은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고, 심지어 판데믹이 발생하기 전에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이 더 높았다. 결과적으로 백신은 정파적으로 해석되어 공화당 강세 주가 사망자가 더 높은 결과까지 불러왔다. 이 영화는 비정상적 상황이 오면 웬만하면 뒤집기 어렵다는 것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여 준 뒤, 트럼프 정부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자는 메시지로까지 보인다. (실제로 다음 미 대선의 강력한 후보로 트럼프가 거론되고 있기도 하니까.) 말하자면 비정상의 정상화 정도가 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극우주의가 준동하는 상황에서, 대의 민주주의의 공간은 상식과 비상식을 가르는 전선이 되어 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주의자가 대선 결선에 올라도 더 이상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고, 미국은 트럼프가 당선됐다. 이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점점 힘을 잃어가는 공론장의 끝에,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입구가 보이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대의 민주주의가 더 이상 비합리적인 인간의 본성을 효과적으로 제어한다고 느끼지 않게 된 상황에서, 그 다음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것은 혜성이 지구에 부딪치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상황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고 해결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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