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위플래쉬> - 사다리 올라가기
    영화 2021. 4. 15. 23:56

     

     

    * 이 글에는 <위플래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초코볼에 숨겨진 그것

     

    앤드류(마일즈 텔러)는 아버지와 영화관에 왔다. 앤드류는 쵸코볼을 팝콘 위에 뿌리고 아버지는 팝콘과 쵸코볼이 잘 섞이도록 통을 흔든다. 그리고 앤드류는 사실 쵸코볼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다. 미리 말하지 그랬냐는 아버지의 말에 앤드류는 말한다. 괜찮다고. 자기는 피해서 먹으면 된다고. 이 장면은 주인공이 얼마나 배려심이 넘치는 아이였는지,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는 어떤 인물로 변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르게 볼 수도 있다. 과도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저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감추고, 남을 우선시하는 사람의 성격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배려심이 넘쳐서 자신을 감추거나. 아니면 너무나 강한 승부욕 때문에, 일단 본인의 의견을 관철해야 할 상황이면 끝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남과 부대끼는 것을 싫어하거나. 어느 쪽도 가능하겠지만 나는 후자를 지지하고 싶다. 이 영화는 앤드류가 기를 쓰고 사다리를 올라가서 플래처와 동등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플래처의 지배

     

    주인공이 사다리를 올라타게 만드는 존재는 플래처(J.K. 시몬스)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이 위대한 재즈 아티스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이는 철저히 자기만족적인 정당화로 묘사된다. 그는 자신의 왕국의 모든 것을 통제 및 지배하고 싶어 한다. ‘템포가 틀렸어라는 말보다는 내 템포가 아니야고 말한다. 초반에 메츠를 내보낼 때 그가 밴드를 통제하는 방법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플래처는 음을 틀린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는, 내가 착각한 건가? 라고 말하면서 반복하게 시키고 아니다, 분명히 누군가가 있다며 되뇌며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과장된 행동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메츠라는 사람을 잡아서 네 생각에는 네 음이 틀린 것 같냐며 압박하고, 그런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는 메츠를 내보낸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메츠를 내보낸 다음이다. 플래처는 에릭슨을 지목하고는 쟤가 틀렸지만, 자신이 틀린 것도 죄라며 상황을 일단락한다. 그렇다면 음을 틀리지 않고 자신이 틀렸는지 안 틀렸는지 모르는 메츠와, 음을 틀리지 않고 자신이 틀렸는지 안 틀렸는지 모르는 에릭슨 중에 더 잘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에릭슨이다. 만약 음악을 잘했는지 못했는지의 기준대로라면 에릭슨도 추방당해야 한다. 하지만 에릭슨은 그냥 한 번 언급만 하고, 조금의 혼도 나지 않고 지나간다. 기준이 모호하다. 과체중이며 너드 같은 외모의 메츠와 패셔너블한 헤어스타일과 준수한 외모의 에릭슨을 비교하면 그 기준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결국 이 조직에서 살아남느냐, 살아남지 못하느냐는 철저히 플래처의 기분에 달리게 된다. 실력도 물론 한 요소가 되겠지만, 메츠처럼 실수를 하지 않더라도 플래처의 기분으로 인해 추방당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플래처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대의 과제인 조직이 된 것이고, 플래처는 이를 이용해 지배력을 발휘한다.

     

    한 장면이 더 있다. 나소 밴드의 메인 드러머였던 라이언의 영입이다. 앤드류의 반응이나 훗날 플래처의 고백으로 미루어볼 때, 라이언은 앤드류 전의 메인 드러머였던 태너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중에 주인공이 지각하는 상황에서, 플래처는 라이언을 태너보다 우선시한다. 앤드류를 자극하기 위해 실력이 떨어지는 드러머를 채용한다. 명백한 주객전도이며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지배와 통제를 관철하면서, 누군가를 성장시키기 위해 고뇌하는 나를 완성시켜 스스로의 논리 정합성을 완성시키기 위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다리 올라서기

     

    앤드류는 어떻게 반응했울까? 쵸코볼 장면에서 언뜻 보였던 그의 경쟁심이 발현된다. 그는 플래처의 권위적이며 폭력적인 지배 논리에 동조한다. 이를 보여주는 두 개의 장면이 있다. 첫째는 식사 자리에서, 음악의 우열을 가릴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무례한 사촌에게 지나가듯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음악하는 사람에게 음악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지는 분명 쉽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앤드류는 그 장면에서 잘라 말한다. 그리고 미식축구를 하는 사촌이 3부리그라며 비웃는다. 그에게는 사람이 우열에 따라 위아래로 배열되는, 플래처식 사다리가 내면화된 것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은 앤드류가 굳이 플래처에 대해 밀고하려 하지 않는 장면이다. 그는 플래처가 자신에게 딱히 뭔가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복수심 때문에 나중에는 밀고하기는 하지만.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밀고로 인해 자신의 왕국을 잃은 플래처는 계략을 통해 앤드류를 박살내려고 하지만, 끝내 주인공은 인정받는다. 어떻게 했을까? 플래처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드럼 독주를 통해 대들어서. 수사자가 왕위를 물려주듯이 주인공의 플래처의 지휘를 받아 최고의 무대를 만든다.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지배는 역시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전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앤드류는 그런 방식이 어울리는 성격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플래처는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기를 쓰고 사다리를 오르려고 하고, 그러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밴드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에. 그러면 그를 인정하는 것이 곧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마침내 주인공은 사다리를 다 올라가 플래처와 동등해진 것이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