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 연어
    영화 2020. 1. 17. 19:36

     

     

     

    * 이 글에는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비롯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된 테마는 공포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제국과, 자유를 위해 제국에 저항하는 저항군의 대결이다. 그러나 강력한 제국은 저항군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다. 어떻게 대항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스타워즈 시리즈는 지금까지 전형적인 영웅 설화의 방식으로 답을 내렸다. 드러나는 영웅의 비범한 혈통, 자신의 운명 및 악의 유혹과 맞서 싸우는 영웅,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통한 문제 해결이 바로 그런 것이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는 유혹을 이겨 냈고 프리퀄 시리즈에서는 유혹에 졌다는 차이만 있을 뿐, 이러한 영웅 설화적 구조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였다.

     

    그런데 시퀄 삼부작 중 두 번째 영화였던 <라스트 제다이>는 조금 달랐다. 레이는 포스에 재능이 있는 자신에게 혈통 상의 비밀이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한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의 자식이었을 뿐이다. 포 다메론은 저항군 수뇌부의 패배주의적인 전략에 질려 선상 쿠데타를 벌이지만 이는 민폐에 가까운 결과로 돌아온다. 스타워즈에서 제다이들은 신비하고 지혜로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 영화에서 전설적인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는 번민에 휩싸여 벤 솔로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한다. 게다가 이는 악당 카일로 렌을 낳는 결과를 초래한다. 주인공들의 갖은 노력은 1밀리미터의 전진도 이루어 내지 못한다. 저항군이 영화 마지막에 만들어 내는 작은 승리는 몽골을 상대로 한 고려 조정의 강화도 천도와 같은 도주였을 뿐이다.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평범한 혈통을 타고 난다. 적극적인 시도가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존경받는 스승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라스트 제다이>는 꿈꾸는 듯한 영웅 설화를 보통 사람들의 처절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데려왔다. 나는 <라스트 제다이>가 완전무결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카지노 씬은 쓸데없이 길었고, 핀의 자폭을 막는 로즈의 말은 뜬금없어 보였다. 하지만 <라스트 제다이>는 내가 본편 9부작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최소한 이 영화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는 야망이 있었고, 그를 위해 시리즈의 기존 논리를 사정없이 비틀었고 이를 통해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는 수준 높은 스토리텔링을 성취했다. 다만 이는 기존 팬들 취향의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라스트 제다이>에 대한 기존 스타워즈 팬들의 극단적인 불호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러한 불호에는 <라스트 제다이>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전통을 거부한 영화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라스트 제다이>가 만들어 놓은 강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연어처럼 본래 그들이 태어났던 강으로 돌아왔다. 인트로 부분에서의 팰퍼틴의 등장은 상징적이다.. 스타워즈의 프리퀄 시리즈와 오리지널 시리즈의 빌런인 팰퍼틴이 7,8편에서는 언급도 안 되더니 갑자기 튀어나와서 시퀄 시리즈의 최종보스까지 차지한다. 그리고 그는 사실은 스노크도 자신이 만들고 조종했고, 모든 것이 자신의 계략이었다고 고백한다. <라스트 제다이>를 부관참시하듯이 레이가 펠퍼틴의 손녀임이 드러난다. 스카이워커의 시대는 끝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라스트 제다이>의 주제를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모두 없었던 이야기로 만들고, 본래 스타워즈 시리즈가 하던 것을 하기 시작한다.

     

    결말부 레이와 팰퍼틴의 전투는 대중적인 모험물 클라이막스의 전형이었다. 인간 피카츄가 된 팰퍼틴은 저항군의 수많은 함선들을 부수려고 한다, 그 순간 쓰러져 있던 레이는 자신을 응원하는 수많은 제다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팰퍼틴은 전형적인 악당의 대사를 하며 시스의 힘으로 레이를 공격하지만 레이는 광선검을 엑스자로 들고 이를 튕겨내 팰퍼틴을 무찌른다. 카일로 렌과 레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긴장 관계는 납작한 애정 관계로 변한다. 레이를 살리기 위해 키스하고 희생하는 카일로 렌처럼 전형적이고 진부한 장면이 또 있을까? 하지만 전형적이고 진부하다는 점을 뒤집어 말하면 대중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매우 쉽기 때문이다.

     

     

    애초에 <깨어난 포스> 시점에서 생각했던 시퀄 시리즈의 전개는 <라스트 제다이>보다는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깨어난 포스><새로운 희망>의 리메이크처럼 보였다. 레이는 루크 스카이워커처럼 사막 행성에서 부모를 잘 모른 채 살아가고 있고, 포스에 자질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제국의 역습><제다이의 귀환>을 한 편으로 줄여 놓은 리메이크처럼 보인다. 루크가 자신이 다스베이더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레이는 자신이 팰퍼틴의 손녀라는 것을 알게 되고, 루크가 다스베이더 덕분에 살아난 것처럼 레이는 카일로 렌 덕분에 살아난다. 이렇게 놓고 보면 <라스트 제다이>는 이질적으로 보인다. 만약 <라스트 제다이><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같았다면 시퀄 시리즈는 모범생 같은 느낌의 시리즈가 되었을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인물만 바꿔서 반복하고, 지루할 때쯤 그리운 인물들을 출연시키는. 골수팬들은 반가운 장면이 많은 우주 영웅 설화에 대충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라스트 제다이>의 방향에서 급하게 핸들을 돌렸다 보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는 처리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의아할 정도로 강박적으로 의사소통 과정에서 틱틱거리는 포 다메론은 전편에서의 성장을 다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핀은 할 줄 아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이 영화는 두 편의 리메이크를 한 편으로 축약하느라 그런지 포 다메론과 핀을 거의 방치한다. 그들의 캐릭터에는 설명이 부족하며, 경험을 통한 성장이나 성장을 바탕으로 한 활약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포 다메론이 어째서 저항군의 사령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대국적인 식견을 갖출 만한 훈련을 받은 것 같지도 않고 계급이 높은 것 같지도 않고 무슨 공을 세운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혹시 고위 지휘관이 죄다 전사해서 그런 건가? 군벌 조직 지도자의 승계라는 게 원래 체계적이지 않기는 하지만. 펠퍼틴의 뜬금없는 등장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일부에서는 <라스트 제다이>의 감독인 라이언 존슨이 스노크의 정체, 레이의 혈통 같은 떡밥을 다 해소해 버려서 선택의 여지가 좁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억지로 궤도로 돌려놓는데 너무 많은 자원을 소모했다는 것이다. 클래식한 스타워즈의 공식을 따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스토리텔링의 방식이 그것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저항군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엄청난 이야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포와 핀의 성장 이야기도 들어갈 수 있었다. 카일로 렌과 레이의 복잡한 싸움과 연애는 얼마든지 다양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오히려 억지로 급류를 뛰어 올라간 것에 가깝다. 이 트릴로지는 충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나 안정적이고 진부한 길로 돌아오고 말았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