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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의 새빨간 비밀> - 위화감
    영화 2022. 4. 19. 00:30

    (* 이 글에는 영화 <메이의 새빨간 비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메이는 13살의 중국계 캐나다인이다. 아시아인 답게 모범생이며 가족을 위해 사원에서 노동도 하던 그는, 어느날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래서팬더로 변하는 신세가 된다. 봉인할 수 있는 날은 붉은 달이 뜨는 단 하루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의식이 진행되던 중 메이는 자신의 일부인 래서팬더의 봉인을 거부한 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가고, 분노한 메이의 어머니인 밍은 콘서트가 열리는 스카이돔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 끝에 밍의 래서팬더를 봉인하기 직전, 환상 세계에서 메이가 본 것은 래서팬더로 변해서 어머니를 상처입혔다고 자책하는 청소년기 밍의 모습이었다. 메이는 밍의 손을 잡고 화해하여 래서팬더를 봉인시키는 장소로 간다. 메이는 래서판다의 모습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갈등은 있었지만 해피엔딩이다. 메이는 어머니와 화해했고, 억눌려 있던 자신의 제멋대로인 면인 래서팬더를 받아들여서 자유롭게 살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 중 상당수는 위화감을 느꼈을 것이다. 과연 갈등이 해결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바로 그런 위화감 때문이다. 

     

     

    영화에서 밍과 메이, 둘의 모녀 관계는 왜곡된 관계로 묘사된다. 밍은 메이에 대한 배려 없이 메이를 사람들 앞에서 망신 주거나 메이의 친구들을 깎아내리는 데 거리낌이 없다. 메이는 가족이 운영하는 사원에서 노동에 참여한다. 그러면서 학업적으로도 완벽할 것을 강요당한다. 이처럼 강력한 통제 관계에 반해 메이가 처음으로 밍에게 반항했을 때인 의식날, 그 관계의 왜곡된 지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메이는 래서팬더를 봉인하는 것을 거부하고, 이때문에 밍은 친척들의 비난을 받는다. 친척들 사이에서 부당한 비난을 받는 동안 억눌려 있는 분노가 풀렸을 때, 밍의 분노는 엉뚱하게도 메이에게 향한다. 가족 질서에 순응하고 자신의 통제에 따라야 할 메이가 어떻게 자신에게 이런 굴욕을 안겨 주냐는 것이다.

     

    작중에서는 가문의 비밀이라고 소개되지만, 래서팬더가 통제적인 가족 질서에 순응하느라 억눌려 있는 사춘기의 감정임이 영화에서 꽤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어머니를 포함한 친척들이 이를 봉인해 버렸다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사춘기를 거치고 성인이 되는 시점에서 가족 질서에 투항하며 자신들의 진솔한 감정을 버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친척들은 겉으로는 꽤 여유로워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 속도 그럴까? 밍은 메이의 할머니에게 자신이 메이에게 하는 통제적 양육을 그대로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화 중 메이의 할머니가 밍의 남편인 진을 거부했을 때 밍은 자신의 래서팬더, 즉 억눌려 있던 감정을 폭력적으로 발산했고, 그 이후 그 모녀 관계는 파탄에 가깝게 됐음이 드러난다. 밍은 자신을 통제하고, 또 자신이 상처를 입힌 어머니에게 두려움과 미안함의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한다. 모녀간의 진솔한 감정적 교류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밍은 자신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메이에게 자신이 받았던 통제적 양육을 되풀이한다. 아니면 그냥 자신이 배웠던 게 그것이었기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되풀이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밍과 메이의 화해는 메이가 밍도 자신과 똑같은 처지였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이루어졌다. 사춘기로서 어머니를 상처 입혔다고 슬퍼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딸은 자신의 어머니 또한 어머니에게 통제당하는 딸이었다는 점에서 연민을 느끼고 어머니를 일방적으로 용서했다. 메이에 대한 과잉 통제 양육에 대해 밍이 잘못을 인정하는 일 같은 것은 없었다. 밍도, 밍의 어머니도 명시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았다(오히려 밍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사과한다.). 메이는 13세의 나이로서 누구보다도 성숙하게 관계를 봉합한 것이다. 이처럼 메이가 성장한 건 좋은 일일까? 일찍 철들면 커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말이 있다. 일단 메이의 모습은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어린이답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장하지 못하고, 철없이 굴지 못한 채(조금의 진전은 있어 보이지만) 부모를 연민하여 자신의 분노를 포기해 버린 메이의 속은 괜찮을까? 썩어버렸을까? 그녀는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남성으로서 그들의 심정을 잘 모른다. 영화의 배경이 2002년이었으므로, 지금쯤 메이는 만 35세가 됐을 것이다. 어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하면서도 너무나도 연민하고, 한편으로는 어머니에게 분노한 딸들은 행복한 어른으로 자랐을까?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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