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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미로 달리기를 하는 자식 (3) - 어쩌다가 버추얼 달리기 대회에 참가했는가
    취미로 달리기를 하는 자식 2022. 12. 2. 00:49

    10.

     

    그래서 처음에 도전해 본 게 마이런 서울이라는 대회였다. 이 대회는 MBC와 아디다스가 같이 주최하는 대회인 모양이다. 옛날에는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독자적으로 달리기 대회도 열었던 모양인데, 내가 알기로는 뉴발란스 런온밖에 안 남은 것 같다... 아무튼 이 대회도 올해에는 안 한 것 같다.

    이때는 코로나19 감염증이 기승이었던 시기라 언택트 레이스로 열린 대회였다. 그런데 사실 말이 언택트 레이스지 그냥 기념품 보내고 뛰라고 하고 인증은 뭐 하든가 말든가~ 식인 대회였다. 더군다나 이때 기념품으로 블루투스 이어폰(난 이미 있어서 누구 줌)이랑 티셔츠를 줬는데, 티셔츠는 좀 핏이 이상해서 버렸다.. 이렇게 보면 사실 돈 내고 등록하는 게 쫌? 이상한 사람? 아닌가? 하지만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ㅋㅋ

     

    그런데 내게는 그렇게 돈을 내서라도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달리면서 어~ 내심장은 뉴약커~~ 굿~~ 하던 날들도 하루이틀이지, 계속 목적 없이 비슷한 구간을 비슷한 속도로 달리니까 딱히 즐겁지도 않고 보람차지도 않았다. 근데 돈을 내고 해치워야 할 녀석이 하나 생긴다? 퀘스트를 깨기 위해 뭐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무튼 4만원인가 거금을 내고 대한민국 내수 경제 활성화에 일조했다.

     

    뭐 예전에 달리기를 했었고 그런 건 다 둘째치고, 달리기를 4월에 시작했으니 6개월만에 10km 대회를 나가는 셈이다. 솔직히 이 정도면 무리인 일정은 아니다. 달리기 부적합한 신체.. 즉 부상이라든지 과체중인 사람이 아니라면 6개월 정도면 대충 모두 10km를 완주할 수는 있다. 나 또한 그랬다. 8km까지 LSD로 달려 본 경험이 있으니까 10km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목표는 60분 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내가 LSD를 보통 km6분 페이스 정도로 했는데(그리고 발전 없어서 여전히 이렇게 하고 있음), 그러면 10km60분 이내로 들어올 수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대회날이 되기 1주일 전에 대회라고 생각하고 10km 거리를 예행연습해 봤다. 그런데 원래 이러면 안 된다.

     

    이전 포스팅에서 LSD런이라든지 템포런이라든지 인터벌은 설명을 했는데, 그때 소개하지 않은 훈련법 중 하나로 TT(Time Trial)가 있다. TT는 특정 거리를 전력으로 뛰는 것으로, 쉽게 생각해서 대회에서 하는 러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달리기 방식은 몸에 많은 부하를 주기 때문에, 10km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5km3km 정도로 실시하는 게 보통이다. 대회(뭐 대회라 봤자 그냥 내가 정한 시간에 뛰는 거지만) 일주일 전에 똑같은 거리를 뛰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으니 뭐...^^ 모를~~수도~~~있는~~~?? 아니겠어요? 사람이라는 게?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ㅋㅋ

     

     

    11.

     

    아무튼 그래서 10km 뛰기 예행연습을 시작했다. 어디서? 내 집 근처 하천에서. 한낮에. 이때가 925일이라 아직 더웠는데 용감도 했지. 아무튼 비장한 마음으로 스타트했다. 처음에는 LSD를 하던 감각으로 6분 페이스로 스타트를 끊었다. 그런데 이렇게 뛰면 60분은 조금 위험한 것 아닌가? 근데 속도 높였다가 페이스 개박살나는 것보다는 일단 완주할 수 있는지 보기나 할까? 하는 생각에 대충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레이스를 완전히 바꿔 버린 운명적인 만남을 마주하게 된다.

     

    대충 1~2km를 지나던 때였다. 싱글렛을 입고 장딴지에 수류탄 두 개를 장전해 놓은 어떤 근육 아저씨가 나를 추월해 가더니 앞에서 뒤뚱뒤뚱 개 잘 뛰는 것 아닌가?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그 아저씨의 뒤를 따라갔다. 많이 차이 나는 것도 아니고 대충 보이는 정도로.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달리기 페이스는 그 아저씨의 달리기 페이스가 되었다.

     

    530초 정도로 뛰고 있는데 생각보다 생각보다 내가 잘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 나는 이렇게 뛸 수 있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수류탄 아저씨.. 종아리가 제2의 심장이라던데 심장 문제는 없으실 듯 ㅋㅋ 굿

     

    그렇게 뛰고 있으니 평소에는 가지 못했던 풍경들이 보였다. 여기에는 이런 것들이 있구나, 저런 것들이 있구나 생각하면서 뛰니까 재밌었다. 뭔가 엄청 넓은 길이 나오고, 언덕길이 나오고, 다리들이 나오고. 대학생 때 자전거 여행을 갔을 때처럼 모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차갑고 냉담한 심장을 가진 나라는 자식이지만 이때는 좀 좋았을지도 모름 ㅋㅋ

     

    아무튼 5km 지점에서 나는 반환점을 돌고 그 아저씨는 계속 앞으로 달려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는 나름 천천히 장거리를 조깅 속도로 뛰는, LSD를 하고 있던 중이셨고 나는 대회라고 생각하고 대회 속도로 뛰고 있는데 그 속도가 맞았던 것이겠지... ㄱㅅ합니다 아저씨 ㅋㅋ

     

    그런데 돌아오고 있으니 뭔가 장딴지가 이상했다. 숨이 막 엄청 찬 건 아니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육이 아팠다. 사람살려 ㅋㅋ 역시 무리했던 걸까? 뭔가 아킬레스건 쪽도 좀 이상한 것 같았다. 근데 이번에는 앞에 비스트 같은 할아버지가 보이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머리가 완전 하얗고 모자를 쓰신 분이었는데 또 쌉고수 답게 싱글렛을 입고 계셨다. 싱글렛이 뭐냐? 민소매 티셔츠인데 꼭 란닝구처럼 살 면적이 많이 드러나는 복장을 말한다. 약간 통기성 좋은 란닝구 같은 거 입고 뛰는 양반들 보면 고인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여튼 이 할아버지는 뭐 어떻게 쫓을 수가 없는 속도로 자꾸 내 앞에서 멀어지려고 하셨는데, 나는 할아버지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계속 앞의 사람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8km 지점.

     

    얼굴에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장딴지에 느껴지던 통증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다리를 움직인다기보다는 좋은 바람을 받은 범선 마냥, 바퀴가 자연스럽게 굴러가듯이 다리가 굴러가는 리듬을 유지하는 느낌이었다. 신기하게도 몸이 하나도 안 힘들고 다리가 앞으로 쭉쭉 나갔다. 심지어 음악도 좋고. 이게 러너스 하이인가. 심지어 힘이 남아서 마지막 1km는 질주하기까지 했다.

     

     

     

    결과는 55분37초. 60초... 할 수 있을까..? 나란 녀석이...? 난 개놈자식이야.. 라고 생각해 왔던 것에 비하면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사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기대 잘 안 하는 성격이라서 늘 기대 이상일 경우가 많기는 함 ㅋㅋ ㅈㅅ)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러너스 하이인지 러너스 할룽방구까지 느꼈고. 큰 달성감을 느꼈다. 내가 10km60분 안에 뛸 수 있는 사람이라니. 심지어 5분 가까이 안쪽으로 들어오다니. 실제 마이런 대회날은 더 빠르게 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12.

     

    감동과 눈물의 첫 10km 기록주를 마치고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는 마이런 본 대회를 뛸 차례였다. 뭐 앞서도 말했지만 온라인 대회이기 때문에 별 거 없고, 그냥 대회 기간 중에 하루 골라서 아무 시간에나 뛰면 되는 거였다.

     

    문제가 있었다. 첫째. 회복이 안 됐다. 장딴지와 발목 부근에 생긴 근육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당연하지. 10kmTT(기록주)로 뛰고 일주일만에 또 뛰는 사람이 있다면, 하프 마라톤을 준비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겠지. 나 같은 애송이는 근육이 버티지 못했다. 근지구력은 꾸준한 조깅, 즉 저강도 달리기로 쌓아야 하는데 그런 몸이 갖춰져 있지 않으니까.

     

    둘째. 저녁으로 엔제리너스에서 무슨 바게트로 만든 불고기 반미 샌드위치를 먹고 두 시간 만에 뛰었는데, 샌드위치가 뛰는 내내 위에서 출렁거려서 위기였다. 샌드위치 그거 그래봤자 먹고 뛰면 한 2시간만에 소화되겠지? 싶었는데 오산불고기였다. (ㅋㅋ ㅈㅅ) 지금 찾아보니 21cm 바게트 빵에 신선한 야채류와 고기류 등으로 풍성하게 채운 어쩌고라고 하니까 소화가 안 될 만했던 듯.. 두꺼비의 위에서 역습하는 방귀벌레처럼 불고기가 내 위에서 열심히 힘내줘서 계속 트름하면서 뛰었다. 마치 고트름이 된 것처럼.. ㅈㅅ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두 시간? #미친놈

     

    뛰면서 찍느라 사진 흔들림 ㅋㅋ 사람이 좀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기록은 나쁘지 않았다. 5431. 526초 페이스. 더군다나 페이스메이커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10km 달리기를 한 번 해 봤던 몸이었던 것이다. 주구장창 발전도 없이 5km 달리기를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게다가 지금 보면 놀라울 정도로 페이스 관리가 괜찮다. 스마트 워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크게 페이스가 밀리는 부분도 없고, 일정하게 페이스를 530초 부근에서 유지하다가 마지막 2km에서 페이스를 높였다. 이때는 어떻게 이렇게 했지? 신기한 일입니다. 요즘은 워치 있어도 잘 못함...

     

    10km 달리기에 재미를 붙였으니 더 열심히 달리기를 했으면 좋겠지만, 사실 많이 못했다. 10km 달리기가 어떤 계기가 되어 주기를 바랐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되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동기부여가 될 만한 어떤 큰 자극이 되지 못했고, 러닝이 부담스러웠다. 지금 돌아보면 러닝 일정에 큰 문제가 있었다. 왜 부담스러웠을까? 그걸 나는 한참 뒤에 깨닫습니다. 연재하다 보면 얘기가 나올 것임.

     

    2주간 10km TT를 연속으로 갈기느라 아킬레스건과 발목에 무리가 와서 잘 뛰지 못한 것도 있다.. 사실 막 뛸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는데, 뭔가 심상치 않아서 쉬었다. 30대 중반은 무리하면 안 됩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때 쉰 건 잘했다. 그때는 내 몸이 낡아서 나약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훈련 일정이 뭐 제정신이 아니었군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열심히 안 함. 10월에 마이런 대회날 제외하고 딱 4일 뛰었습니다.

     

    13.

     

    그래도 2021년 시즌은 11월 6일, jtbc 마라톤 대회날(역시 버츄얼 러닝인지 나발인지 온라인 대회였지만), 10km 뛰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대회 날 등록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뭐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10km 뛰는 건 재밌었다. 휘뚜루마뚜루 대충대충 목적의식 없이 뛰는 것보다 뭔가 도전할 대상이 있으니 게임하는 것처럼 퀘스트를 깨고, 뭐 좋다. 이렇게 온라인으로라도 뛰지 않았으면 지금 달리기를 취미로 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록은 뭐 이렇게 괜찮게 나왔다. 솔직히 페이스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전형적인 초보의 실패한 레이스이다. 1~3km에서 오버페이스하는 바람에 망할 뻔하고 어찌어찌 수습해가면서 뛰는... 근데 지금도 초보라 여전히 이런 실수 반복함.

     

    그런데 어떻게 기록은 잘 나왔는가? 뛰기 일주일 전에 10km TT를 하는 돌은 행동(그래도 나 같은 녀석도 학습이라는 걸 하는 자식이라 그런 짓을 또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을 하지 않은, 몸이 나름 프레시한 상태에서 10km 기록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10km를 뛰는 것 자체가 훈련이 된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정도가 열심히 훈련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금까지 나름 대충 긴 시간 동안 슬렁슬렁 쌓아온 것으로 닿을 수 있는 최고점이 아니었나 싶다. 이때는 10km 날만 대충 벼락치기로 뛰는 시기였고(이렇게라도 뛰는 게 어딘가 싶기는 하지만), 실력은 제자리걸음을 걷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 때문에 나의 달리기는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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