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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미로 달리기를 하는 자식 (5) - 2022 서울레이스
    취미로 달리기를 하는 자식 2022. 12. 27. 00:30

    너무 자꾸 천천히 써서 미안합니다. 일단 나는 부지런한 자식이 못 되고 자꾸 나는 개허접인데 이런 거 써도 되는 건가 싶어서 의욕이 안 났음 ㅋㅋ ㅈㅅ 그래도 시작한 거니까 끝장을 보겠습니다 ㅋㅋ 마 함 해 보입시더!!!!!!!!!!!!!!!! 가 보입시더

     

     

    20.

     

    대회 전날 대회장까지 6시 반까지 오라는 문자가 와서 설마 진짜 그때 도착해야 하는 걸까,,,? 반신반의하면서 잠들었다. 원래는 10시쯤에 자려고 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12시가 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5시에 기상했다. 5시간도 못 잤으니 평소였으면 달리기도 포기할 정도의 수면 양이었다.

     

    그래서 일어나고 나니 달리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개박살내기 위해? 고문하기 위하여? 5시에 일어나서 이렇게 잠도 덜 잘 채로 얼룩말처럼 달리러 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5시 정각에 트위터 친구에게서 일어나라 인마 ; 라는 멘션이 와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SNS를 켜는 중독자라서 죄송합니다. 아침으로는 편의점 카스테라를 1.5개와 두유 한 팩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많이 먹은 것 같기는 한데 다행히 뛰면서 부대끼지는 않았다.

     

    6시가 되기 전에 집에서 나와서 지하철을 탔다. 여전히 달리기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갖고서. 그런데 중간에 2호선을 탔더니, 딱 봐도 러닝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기온이 10도 전후 날씨가 쌀쌀한데도 반바지를 입고 있거나, 타이즈를 입고 있거나, 헤어 밴드를 했거나, 러닝화를 신고 있거나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핫핑크의 대회 티셔츠였다. 시청역에 가까워질수록 열차에는 핫핑크들이 늘어났다.

     

    핫핑크!!!!!!

     

    6시 반을 살짝 넘겨서 시청역에 도착하니 그곳은 핫핑크의 바다였다. 인구 밀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면 정신적으로 30퍼 정도 대미지를 받는 사람으로서 일단 조금 당황했다. 마이크로 뭐라뭐라 열심히 말하는 사람들음악소리들.. 삼삼오오 모여있는 휴먼들.. 왠지 모르게 만화 헌터X헌터에서 헌터시험 때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일단 짐을 맡겼다. 짐이라고 해도 후드 집업과 이어폰 케이스 정도였지만. 그리고 뛰기 한 시간 전 쯤에 칸타타 스위트아메리카노를 먹었다. 당분 뻠핑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런데 이건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뛸 때 커피냄새가 속에서 조금 올라왔다. 핫핑크 휴먼들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도 쓰기 어려웠다. 이 개놈자식들(죄송합니다). 한참 걸어서 조금 멀리 있는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생각해 보니 그 많던 줄이 대변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서 서울 광장에서 기다리다 보니 스트레칭 할 공간도 없었다. 실시간으로 정신적인 대미지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재밌기도 했다. 이렇게 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그리고 축제 같은 분위기가. 지금까지 혼자서만 달려 와서 러닝을 이렇게 인싸놈들의 페스티벌처럼 즐긴 적이 없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 뛰러 나올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싶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있다 보니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하프 주자들부터 일단 출발하고, 서서히 10km 주자들이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다. 핫핑크 녀석들 사이에 껴 있는 가운데 마이크 든 사회자는 화이팅!!!!!!!! 화이팅!!!!!!!!! 을 외쳤다. 사회성 최약체인 이 몸조차도 어쩐지 몸이 달아오르고 뭔가 기대되는 느낌을 받았다. 오프레인 레이스에서 뛰는 기분은 어떨까? 재밌을까? 50분 깰 수 있을까? 힘들지는 않을까?

     

     

     

    그리고 출발 신호가 울렸다. 맨 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출발했겠지만 약간 뒤쪽에 위치한 나는 서서히 출발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근데 이 시점에 무려 나이키런클럽 앱 개자식이가 또 초기화된 문제가 발생했다.. 이거 예상했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체크를 못했다. 저번 포스팅에서 얘기했듯이 이 당시 나이키 런 클럽이 자꾸 로그인이 풀려 있고 새로 로그인 할 때마다 약관 동의를 반복하는 증상이 있었다. 가까스로 재로그인은 했는데, 그리고 재로그인을 하고 나면 세팅이 풀리는데, 이걸 깜빡하고 다시 안 바꿔 놔서 후회했다. 이 당시 워치가 없었어서 500m마다 음성 안내 받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걸 안 해 놔서 1km씩 받았음. 그렇다고 대단한 뭔가는 아니었지만 하여튼 불편했습니다. 나이키 가만 안 둔다 ㅋㅋ

     

    출발선을 향해 걸어가다 보니 점점 걸음에 속도가 붙는 것이 느껴졌다. 출발선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나이키 앱 출발 버튼을 누르면서 슬슬 뛰기 시작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뛰니까 기분이 신기했다. 이어폰을 끼고 있었음에도 말발굽 같은 무수한 발소리가 들렸다. 아스팔트 도로를 막고 뛰고 있으니 박근혜 탄핵 시위 때 서울 중심부를 걸어다녔던 기억도 나고.. ㅋㅋ ㅈㅅ합니다.

     

    기분이 좋은 건 둘째치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초반에 속도를 못 냈다. 후미에서 출발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이날 나의 계획은 5분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막판 2km에 속도를 내는 것. 하지만 초반에는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면서 사람들을 피해서 뛰어다니느라 속도를 마음껏 내지 못했다. 인도를 침범해 가면서 앞의 사람들을 계속 따라잡아 갔다. 근데 앞질러 가는 게 레이스 동기 부여 차원에서는 좋은 것 같다. 하프 주자들이 10km 주자에 비해 20분 전에 출발하다 보니, 하프 주자들을 따라가면서 추월하는 게 모멘텀 형성에도 좋은 것 같다.

     

    뛰다 보니 사람도 조금 줄어서 초반 1km지점까지에 비해서는 속도를 조금 낼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청와대 쪽으로 달리는 오르막길이 등장했다.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그동안 하천변만 뛰어서 그런가 이런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처음이었다. 헛웃음이 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오르막길은 별로 난이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이 부분 빼고는 평탄해서 전체적으로는 난이도 적은 코스였다고 한다. 맙소사 ㅋㅋ 서울의 도심을 뛴다는 희열이 조금 있었는데, 처음이라서 그런 느낌을 별로 즐기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즐겁긴 했다.

     

    청와대 업힐(오르막길)이 끝나자 다운힐(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속도를 확 낼 수도 있었지만 무릎이 걱정되어서 속도를 잘 안 냈다. 그런데 너무 사리다 보니 자꾸 사람들이 나를 추월하는 것이다. 이거.. 너무 사리는 것 아닌가..? 싶어서 조금 나도 속도를 냈다. 보폭이 너무 넓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내리막길에서 440 정도 페이스가 나왔다.

     

    내리막길이 끝나고 중반 부분에 돌입했다. 숭례문쪽으로 돌아서 을지로5가에서 반환하는 코스였다. 사실 길 잘 몰라서 코스 안내 보고 다시 쓰는 것임. 코스가 진짜 좋긴 했다. 초반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막히지도 않고,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달리는 재미도 있고. 물론 시민들은 길이 막혀서 재미 없었겠지. 민폐 스포츠를 즐겨 버려서 죄송합니다...

     

    중반 레이스에서는 라이벌들 덕을 봤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나와 비슷한 페이스로 달리는 몇 명이 눈에 밟혔다. 힘들어도 그들을 심정적인 동지이자 경쟁자로서 여기게 되니 더욱 수월하게 뛸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양반들은 아무런 생각 없었을 수도 있지만.. 서로 계속 추월했다가 추월당하기를 반복했는데 한 7km 넘는 순간 어느 순간 안 보여서 섭섭했다. 앞질러 가신 건지 못 따라오신 건지 아니면 애초에 하프 주자였는지. 하프 주자는 아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그분들과 같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레이스가 거의 끝나 있었다.

     

    주법에서 가장 신경쓴 것은 롤링을 너무 크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롤링은 해리포터 작가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농담이고 발이 착지했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오는, 자연스러운 타원성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종아리 지구력에 자신이 없어서 보폭을 늘리고 롤링을 크게 유지하기보다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내 능력에 맞도록 455 정도의 속도로 페이스를 유지했다.

     

     

    이렇게 사진도 찍힌다는 것을 나는 몰랐습니다 ㅋㅋ 돈 안 내서 고화질은 없음

    레이스 종반이 되니 비가 내렸다. 열이 나는 몸을 식혀 주는 이슬비가 반가웠다. 하프 주자들과 길이 달랐기 때문에 더이상 앞에서 따라잡을 사람도 없었고, 어느새 주위에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냥 달렸다. 숨이 막 엄청 찬 건 아니었는데 종아리가 슬슬 아파왔다.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지만 막판 스퍼트를 길게 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막판에는 좀 이상했다. 애초에 피니시 라인이 11km에 설치되며, 기록 측정은 10km 지점에서 된다는 안내는 받았었다. 그래도 당연히 10km가 어딘지 멀리서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나이키 런 음성 안내가 500m였으면 그래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1km다 보니 이거 막판 페이스를 올려야 하나? 올려도 되는 곳인가? 날이 흐려서 나이키 런 클럽이 조금 부정확할 수도 있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뛰다 보니 나이키 안내에서 10km가 넘었다고 나온다. 이거 맞는 건가? 계속 긴가민가한 상황에서 아까 10km라는 작은 안내판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작은 과속방지턱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게 혹시 시간을 재는 곳이었던 걸까? 지나고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다. 스퍼트를 생각보다 못한 채 허무하게 레이스가 끝난 것이다. 분명 힘들긴 힘들었어도 더 확실히 쥐어 짤 여지는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10초 쥐어짠다고 뭐가 특별히 더 의미가 있었을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무리했다가 쥐가 났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마음 갖고 피니시 라인이 있는 11km까지 대충 뛰었다. 중간에 어떤 여자 분이 쥐가 나서 치료받고 있었다ㅜㅜ 나보다 확실히 빠르게 달리시던 분일 텐데, 10km라인 넘어서 그렇게 다치신 것 같다. 불쌍.. 아무튼 11km까지 뛰어서 피니시라인 넘고 첫 오프라인 달리기 마무리했다. 이때 항상 10km까지만 뛰었었는데, 11km 뛴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기다리던 데상트 직원들한테 생수를 받고 머리에 뿌렸다. 걍 평소에 그거 좀 해 보고 싶어서 뿌림 ㅋㅋ 지송

     

     

    광장으로 들어와서 기념품을 받았다. 광장에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일단 완주 메달을 받았다. 전광판에 기록이 찍히는 곳은 줄이 너무 많아서 못 갔다. 애초에 줄 별로 없었어도 내향인 자식이기 때문에 가지는 못했을 듯. 그래서 바로 짐을 찾으러 갔다. 근데 이 녀석들이 번호대로 안 하고 가서 ㅋㅋㅋㅋㅋㅋ 직원 분인지 자봉 분인지 하여튼 한참 동안 찾느라 고생했다. 15~20분 걸린 듯? 이게 짐을 맡은 사람이랑 찾는 사람이랑 시스템상 따로였던 것 같은데 짐을 맡은 양반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한 것 같다. 복수합니다 ㅋㅋ 겨우겨우 짐을 찾기는 찾았는데 기다리다가 장딴지가 살짝 올라오는 것 같았다.   더 이상 핫핑크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황급히 스트레칭 한 번 해서 장딴지를 달래 주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것이 기록이다.

     

     

    4940. 내 인생에 50분 안쪽으로 들어올 날이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들어왔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평소보다 열심히 훈련해서 한 달 5~60km 정도 뛰었고(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무척 부족한 훈련량이긴 하지만..), 이 훈련량이 내 다리와 심장, 폐를 변화시켰다. 심지어 한 달 쉬었는데도. 뭐 아니면 진짜 러닝화 효과였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50분 안에 들어온 게 대단한 건 아니고, 입문자를 벗어났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기뻤다. 아무튼 어디 가서 취미로 달리기를 하는 자식이라고는 할 만하니까.

     

     

    21.

     

    집에 와서는 씻고 잠들었던 것 같다. 달리고 난 다음날에는 어깨가 조금 아팠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엄청 긴장했던 모양이다. 종아리야 당연히 아파서 한동안 절뚝거리면서 지냈어야 했다. 달리기는 1주 있다가 겨우 복귀했다. 햄스트링이 또 조금 아팠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어깨와 달리기에 생겼던 근육통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렇게 내 첫 오프라인 대회는 끝났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달리기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통제된 도로를 달리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줄 몰랐다. 달리기라는 게 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만든 원초적인 능력이라고 다들 하지 않나. 군중 속에 소속되는 것도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것 중 하나고. 그래서 군중 속에 달리는 것? 이거는? 본능적으로 못참지? 즐거움 곱하기 즐거움 이런 것이 된 것 아닐까. 여러분도 달리기를 취미로 하는 자식이라면 대회는 한 번 나가 보기를 바랍니다. 님들의 생각보다도 좋을 것이라고 보는데 물론 아닐 수도 있지요. 사람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무기력한 내향인의 삶은 현상 유지만 할 뿐 최대한 에너지가 안 드는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프라인 대회에 참가한 건 엄청 의외일 수 있다. 내가 어쩌다가 오프라인 대회에 참가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달리기를 시작했기 때문이겠지?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다 보니 어찌어찌 나가게 된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5km. 버츄얼 10km. 오프라인 10km. 마치 천천히 온도가 올라가는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사실은 이 정도면 개구리가 중간에 도망친다고 함). 이번에도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고 대충 집에서 배나 긁고 있었으면 이런 즐거움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나라도 새로운 경험에 마음을 열어놔야 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달리기 대회 이후 새로운 경험에 문을 연 횟수 : 0번 ㅋㅋ

     

    그리고 달리기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두 번의 레이스가 더 남았다. 50분 언더 주자라는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11월에는 jtbc 마라톤 10km와 손기정 마라톤 10km에 나갔다. 여기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놀라운 모험(사실 별다른 놀랍지 않음)의 이야기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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