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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위쳐>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영화 2019. 12. 27. 21:52

     

     

     

    (* 이 글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위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위쳐>가 나왔다. 나는 위쳐 게임을 플레이한 적도 없고 유튜브로 게임 '위쳐 3'의 플레이 영상을 봤을 뿐이지만, '위쳐 3'의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 때문에 나는 이 드라마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엔딩까지 보고 난 후의 내 감상이다.

     

     

    구성에 대해

     

    <위쳐>는 게롤트(헨리 카빌), 예니퍼(안야 차로트라), 시릴라(프레이아 앨런) 이렇게 세 인물이 겪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야기들의 경계가 확실하지는 않다. 중간중간 게롤트와 예니퍼의 이야기는 겹치기도 하고 파이널 에피소드는 세 인물이 소든에서 교차하는 컨셉이기도 한다. 게롤트와 예니퍼의 이야기는 옴니버스 방식으로 진행되고, 시릴라의 이야기는 띄엄띄엄 시간순으로 진행된다. 작중 시간 전환은 매우 혼란스럽다. 예를 들어 드라마 초반부에 나오는 신트라의 멸망은 시간으로 따지면 작중 사건 중 최후반부에 발생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게롤트의 타임라인에서 그 한참 전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고, 예니퍼의 타임라인에서는 또 다른 타임라인의 일을 다루기도 한다. 이는 세 개의 인물이 교차하는 형식 상 생긴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시릴라의 이야기는 신트라의 멸망에서 시작하고, 예니퍼와 게롤트의 이야기는 그 한참 전의 시간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성은 정신차리고 보면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나에게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이런 구성은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구성하는 데 약점이 있어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차라리 정석적으로 시간 순으로 구성하여 위쳐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예니퍼의 이야기로 전환했다가 회상으로 인물 설명을 하고, 두 인물이 얽히는 것을 보여 주고 신트라의 멸망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객들의 직관적인 이해도 쉽고. 그런데 이런 의견이야 관객의 입장에서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거고, <위쳐>가 택한 방식은 일어나는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인물 설명에 집중하고, 인물들 사이의 더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다. 막상 드라마를 만들려다 보니 시간 순으로 했다가는 답이 안 나오겠다 싶었을 수도 있고. 첫 에피소드를 임팩트 있게 만들어야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쉽기도 할테고.

     

    피날레 에피소드는 솔직히 내 취향의 전투신은 아니었다. 마법사 능력 간의 유기적인 연결과 이에 대응하는 다수 군대의 대결, 소수와 다수의 일진일퇴의 대결 같은 스케일 큰 장면을 기대했는데 드라마에서 다룬 모습은 소규모 각개전투에 가까웠다. 많이 쳐 줘도 한 30100정도의 싸움이 아니었을까? 물론 대규모 전투를 연출하기 힘든 예산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개개의 마법사들의 강력함은 기껏해야 한 20~30명 정도를 상대할 수 있는 수준처럼 보이는데 대륙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른 닐프가드 군대가 왜 그 정도 마법사들을 상대하지 못하는지 잘 설득되지 않았다. 물론 숲을 잘 활용해서 방어하고 있으니 진격 못 하고 금지된 술법을 사용하고 그랬겠지만.. 왜 나중에 성 다 떨어지기 직전에도 군대가 진격하지 않고 한 다섯 명만 보내서 문 앞에서 나무덩굴에 죽었는지..

     

    재미있게 봤지만 8시간짜리의 프롤로그 혹은 프리퀄을 본 느낌이었다. 뭔가 거대한 이야기가 일어날 것 같았고 그 안에 감춰진 비밀과 음모가 드러나고, 이를 파헤치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을 노린 드라마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뭔가 산만하게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게롤트와 시릴라가 이제 막 만나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할 것 같은데 바로 끝난다. 심지어 예니퍼와 시릴라는 아직 만나지도 못했는데! 위쳐 세계관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앞으로 할 이야기가 훨씬 많은 시리즈라고 알고 있다. 드라마가 계속 시즌을 이어서 제작되기를 바란다.

     

     

    예니퍼

     

    자궁을 재생하려는 예니퍼는 글쎄.. 설득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라도 신체의 일부를 잃으면 그에 대해 집착할 것 같기는 하지만 예니퍼라는 캐릭터의 일관성과 맞지 않아 보이는 묘사였다. 게임 속 예니퍼는 잘 사회화된 사이코패스처럼 묘사된다. 다른 사람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도구로 사용하며, 자기애가 강해 다른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자신보다 못한 인간으로 평가하는 오만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강력한 힘을 가진 마법사이기도 하고.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예니퍼는 배우의 인상이 선해서 아무리 화를 내도 착해 보이기는 하지만 게임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드라마의 특성상 조금 더 감정적이기도 하고(게롤트와 키스하면서 게롤트가 아드를 쓰는 장면은 보면서 내가 다 창피했다). 아무튼 타인을 도구화해서 자신의 자궁을 찾으려고 하고, 자신이 끼치는 피해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굳이 자궁일까?

     

    왕의 마법사로서 아기를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듯이, 드라마에서의 설명은 모성이다. 가능성을 빼앗겼다는 말에서도 드러나고. 하지만 쉽게 납득되는 설명은 아니며 굉장히 클리셰적이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강함을 손에 넣기 위해 자궁을 잃고, 또 그 자궁을 되찾고 모성을 회복하고 싶어서 노력하는 걸까? 오히려 예니퍼라면 모성 정도는 보통 사람들이 집착하는 대상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

     

    물론 드라마에서 예니퍼의 모성에 대한 빌드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니퍼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 아버지와 티사이아(뮈안나 부링) 간의 협상을 통해 4마르크에 팔려 나간다. 여기서부터 티사이아와 예니퍼는 애증의 유사 모녀관계를 구성한다. 예니퍼에게 티사이아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을 마법사로 만들어 준 대상이지만, 반면 자신의 가격을 4마르크로 깎으면서 데려오고 왕의 마법사로 가려는 자신을 배신한 대상이다. 이런 배신으로 인해 예니퍼는 무리하게 자신의 자궁을 들어내어 자신의 외모를 바꾸고 왕의 마법사로 들어간다. 드라마의 논리를 따라가자면 예니퍼가 하는 건 어머니로 인해 제거된 자신의 어머니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예니퍼도 여성이고, 여성은 모성을 가진다는 뻔한 이야기에 가깝지 않나.

     

    그런데 예니퍼가 왜 닐프가드와 싸우는지는 잘 모르겠다. 반골이라서? 불평불만 가득한 냉소꾼인 예니퍼가 그렇게까지 헌신적으로 닐프가드와 싸워야 하는 이유가 뭘까?

     

     

    게롤트

     

    게임 속의 게롤트가 민첩하게 괴물들의 급소를 노리는 고양이라면, 드라마 속에 보이는 게롤트는 거대한 근육으로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는 호랑이 같다. 뒷모습을 볼 때에는 거대한 대둔근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위쳐 의식의 약물은 스테로이드처럼 보인다. 불임이 된 이유가 혹시.. 예니퍼와 마찬가지로 게롤트도 게임 속보다는 조금 더 감정적이다. 드라마의 특성상 감정적으로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냉정한 제이슨 스테이덤과 열받은 제이슨 스테이덤을 오가는 것 같았다. 배우의 외모상 뭘 해도 정의의 사도처럼 보였지만 우려보다는 괜찮은 느낌이었다. 모든 일에 냉소적인 모습과 허스키한 목소리도 꽤 자연스러워 보였다. 액션씬도 호쾌하게 소화했다. 그 근육이 있으니 당연한가..

     

    외부인의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멸시를 받고, 보통 사람 일에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본인의 윤리와 맞지 않는 일에 개입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참견꾼이 되는 게롤트의 캐릭터에 대해서 드라마는 꽤 괜찮게 다루기는 했지만, 아직도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 물론 그럴 여지가 많이 없기는 하다. 그의 성격은 의식으로 인해 냉정하게 변했고, 뭔가를 얻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고 뭔가를 지키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시즌1에서 드러난 외부인으로서의 고뇌라든지, 본인이 받고 있는 멸시와 상관없이 도움을 주는 고행자적인 입장을 더 부각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탐정물, 추리물로서의 모습도 잘 안 보여 준 것 같은데 앞으로는 그런 부분도 좀 더 다뤄줬으면 하고.

     

     

    그 외 잡다한 생각들

     

    - 위쳐의 액션신은 전체적으로 멋졌지만 예니퍼가 쓰는 칼이라든지, 칼란테 여왕이 휘두르는 칼은 너무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칼이 버거워서 휘두르기조차 힘들어 하는데 그렇게 휘두른 칼에 적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 대역을 잘 쓰든지, 칼을 좀 가볍게 만들든지, 아니면 말을 태워서 창 들고 돌진을 시키든지, 칼 말고 마법이나 쓰든지.. 설득력 있는 액션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 풍경이나 성을 멀리서 보여 주는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다. 요즘 드라마들 다 이 정도는 하나?

     

    - 이 드라마에 대해서도 피씨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양한 인종을 배치했고, 예니퍼의 분량을 너무 키웠다는 지적이다. 다양한 인종이 나오는 게 그렇게 문제인가? 바이킹 나오는 드라마에서 흑인이 나온다면 이상한 일이겠지만 판타지 세계관에서 사회적 고려로 다양한 인종을 쓰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싶다. 예수를 다룬 수많은 영상 작품이 그를 백인으로 그렸지만 고증 논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모든 작품은 사회적 맥락에서 재해석되며, 당연히도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있다. 관객이 폭력을 따라하지 않도록 하고,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줄 정도의 잔인함을 작품에 포함하지 않는 것 모두 사회적인 책임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인종을 다양하게 설정하는 것도 그렇다. 제작자의 판단에 따라 폭넓은 인종에게 공감 받고 싶거나, 소수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어서 다양한 인종을 등장시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 작품 안에서 이야기해야지 어떤 더러운 음모가 작품을 오염시켰다고 비판하는 건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니다. 가만히 보면 요즘 피씨충 운운하시는 분들 <스타워즈>에서 피씨라는 악의 이데올로기가 은하계를 좀먹고 있고 본인들을 이에 대항하는 저항군 투사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본인들이 오히려 제국군에 가깝다는 걸 아셔야 할 것 같다. 비교적 상상의 여지가 있는 세계관에서 백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그 중에서도 백인 남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 트리스는 위쳐 팬들에게 꽤 중요한 캐릭터인데, 여기서는 일단 비중이 있는 단역 정도로 활용되었다. 원래도 전체 시리즈에서 그렇게 비중이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고 하니. 특히 드라마에서 보여 준 모습을 보면 마법사 중에서도 약한 축에 속하는 듯한 능력이었고, 불을 맞고도 의연하기보다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모습이었다.

     

    - 이런 대작 판타지 드라마는 앞으로도 한참 동안 <왕좌의 게임>과 비교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 취향은 좀 더 현실적이고 냉혹한 <왕좌의 게임>의 세계관이지만 <위쳐>도 나쁘지 않았다. 일단 나는 드라마의 엔딩을 보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위쳐>는 엔딩을 봤기 때문에. 그런데 이 드라마의 원작을 몰랐을 경우에도 끝까지 봤을지는 잘 모르겠다.

     

    - 나는 게임 '위쳐 3'에서 주인공의 선한 행동이 꼭 선한 결과를 내지 않으며, 어느 쪽이 선인지 어느 쪽이 악인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모호함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런 면에 대해서는 별로 다룰 여력이 없었던 듯하다. 다음 시즌에서는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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