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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시> - 뒷전이 된 이야기
    영화 2024. 1. 14. 22:53

     
    (* 이 글에는 영화 <위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떤 마법사가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소원을 주라고 한다. 대신 마법사가 주는 건 마법사가 소원이 이루어 줄 가능성이다. 확률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는 않고, 평생 안 이루어질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소원을 내는 대가로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채 살아가게 된다. 자기의 가장 큰 소망을 잊어버리고 일부분이 없어진 채 그냥 살다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누가 이 거래에 응할까? 놀랍게도 <위시>의 무대는 그런 거래를 국민 전체가 받아들인, 로사스라는 국가이다. 놀랍게도 그 나라 사람들 모두가 이처럼 어딘가 이상한 이 거래에 합의했고, 이는 국가의 큰 장점으로 소개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거래는 이 영화가 보여 주는 난맥상의 핵심이다.
     

     
    <위시>의 주인공인 아샤는 매그니피코 왕의 견습생 면접을 갔다가 왕이 소원을 어떤 식으로 이루어 주는지 보고서야 소원을 고르는 건 왕의 자의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고, 그렇다고 소원을 돌려 줄 수도 없다고 하는 걸 듣고 비로소 이런 거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기존 체제를 바꾸려는 아샤와, 기존 체제를 수호하려는 매그니피코의 대립 구도가 발생한다. 주인공이 대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논리다.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므로 원하는 사람은 소원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매그니피코는 자신이 이 나라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이제 와서 이러냐는 것 외에 어떤 정당성도, 논리도 없다.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멍청하게 이에 대해 합의하고 있다. 이 구도는 균형이 상당히 무너져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OZvjbMh4
     
    그렇기에 아샤가 This wish를 부르며 깨달음을 얻는 모습은 너무나도 공허하다.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로사스 국민들은 모두가 멍청해 보이지만, 아샤 또한 이 체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런 결정적인 사건을 통해야만 깨달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른 국민들에 비해 덜 멍청해 보일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QFSwt2lA8E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I'm a star는 더욱 심각하다. 별을 만나고 모두가 별이라고 부르는 노래는 서사의 흐름과는 완전히 떨어져 있어서 거의 아무 상관없이 그냥 만들어 놨으니까 넣은 노래인 것처럼도 보인다.
     
    Let it go가 파괴력이 있었던 이유는, 항상 갇혀 살았던 엘사가 스스로를 가뒀던 감옥을 깨고 자유로워진다는 서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좀 그랬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기는 하지만 ㅋㅋ ; )
     
    그에 비해 나는 별이야라는 노래 가사는 그냥 우리가 다 별이라는 존재라는 점이다.. 나중에 있는 최종 결전을 생각해 보면 별이라는 건 사람들 간의 유대를 상징하는 것도 같은데, 그러니까 유대라는 건 의미가 없다는 매그니피코 왕의 어떤 논리라도 있었던 걸까? 그냥 최후의 싸움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 싸워서 이 별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 거라면 이건 너무나도 나이브하고 헐거운 구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이야기에 깊이를 부여하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매그니피코 왕은 그다지 입체적이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뭐 개성은 있지만 다들 완전히 평면적이고(그리고 사견을 넣자면 귀엽기보다는 꼴보기 싫게 개성있었던 듯), 무슨 가치의 대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딜레마적 상황도 없다. 심지어 주인공이 극복해야 할 어떤 내적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적당한 시각 효과, 노래, 귀여운 마스코트를 제외하면 너무나도 공허한 영화였다. 솔직히 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됐는지도 모르겠다. 디즈니가 노래와 시각효과와 마스코트만 잘 갖춰져 있으면 이야기 같은 건 적당히 끼워맞추면 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설마 그렇지야 않겠고, 뭐 어른이 애들 보라고 만들어 놓은 애니메이션에 또 왈가왈부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만, 아무튼 우선순위가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면 그건 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사족. 이 영화에서 소원이라는 건 (매우 공허하게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온다. 매그니피코 왕의 기존 체제는 왕이 사람들의 소원을 빼앗고, 체제에 위험하지 않은 소원만 선택적으로 들어 주는 시스템이다. 이는 상당히 직설적으로 권위주의적 독재를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아샤가 승리한 후 생긴 것은 각자가 자신의 소원을 자율적으로 이루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서로를 돕는 사회이다. 물론 이건 꿈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 가장 이상적인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모두가 모두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사회의 모토이다. 사실 우리는 그런 이데올로기 하에서 살고 있지만, 꿈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을 갖는 것은 사실 매우 한정적인 계급에 한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서 꿈이라는 것은 중산층 이상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소원을 다루는 것도, 소원을 위해 노력하라고 하는 것은 내게는 다분히 기만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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