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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jtbc 서울마라톤 후기
    취미로 달리기를 하는 자식 2023. 11. 10. 20:50

     

    0. 

     

    어느 순간 풀코스 마라톤에 나가기로 했다. 계기는 별 것 없었다. 10km 대회를 몇 번 나갔더니 조금 싱겁다는 느낌이 생긴 것도 계기 중 하나였다. 물론 10km도 사실.. 기록 내려고 하면 절대 싱겁지는 않지만..

     

    그것보다 더 결정적으로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여기저기 인터넷에서 본 풀코스 주자들의 후기였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후기를 썼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하프나 10km 후기의 건조한 감정과는 달리, 풀코스 주자들의 후기에서는 어쩐지 하나같이 벅차올라 어쩔 줄 모르겠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이었다. 뭐가 저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흔든 걸까? 좀 궁금하기도 했고, 나도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5월에 조선일보 서울 하프 마라톤에서 첫 하프를 뛰고, 11월에 jtbc 마라톤에서 첫 풀코스를 뛰기로 했다. 그중 5월 하프마라톤은 아래와 같이 뛰었다.

     

    2023 조선일보 서울하프마라톤 후기 :: paugak (tistory.com)

     

    하지만 안 눌러 볼 것이기 때문에 간단히 요약하자면 1시간 40분 안에 들어온다고 깝싸다가 1시간 42분 안에 겨우 들어옴 ㅋㅋ 이때 준비하면서 몇 가지 느낀 게 있었다.

     

    1) 튠업레이스(목표 대회 이전에 나가는 대회)를 위해서 테이퍼링(훈련량 줄이기) 했다가는 이거 죽도 밥도 안 됨 ㅋㅋ 특히 첫 하프, 첫 풀이라서 거리 늘리는 게 필요한데 훈련량 줄였다가는 늘릴 수가 없음.. 

     

    2) 근지구력에 비해 심폐지구력이 좀 부족한 것 같다(ㅋㅋ 과연 그럴까요..?). 젖산 역치 훈련 좀 열심히 하기로 함 ㅎㅎ ; 더 이상 횡격막 아파서 울면서 뛰고 싶지는 않았다 ㅋㅋ

     

    그래서 호기롭게 계획을 세웠다. 18주짜리  계획이었고, 주6일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하프 때에는 주5회 하기로 해 놓고 3~4회만 했지만 ㅎㅎ ; 하프 때와 마찬가지로 주 1회 젖산역치, 주1회 LSD(장거리), 나머지는 조깅을 할 계획이었다. 계획대로라면 훈련량이 최대를 찍을 때에는 주 마일리지가 90km 이상이 되어야 했고, 세 달 동안 월 200~300의 마일리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

     

    전체 계획을 다 쓰기는 좀 그렇지만, 계획에 따르면 훈련량이 피크를 찍어야 했던 대회 5주 전에는 이렇게 해야 했다.

     

    월 : 휴식

    화 : 13km 조깅

    수 : 445(하프 페이스) 8km(워밍업, 쿨다운 제외)

    목 : 6km 조깅

    금 : 20km 조깅

    토 : 6km 조깅

    일 : 35km LSD

     

    목표는 330이었다. 첫 풀로는 좀 높은 목표인데, 일단 목표를 높게 세워야 달성했을 때 성취감도 있고 열심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ㅋㅋ 하프 때 140 한다고 오버페이스했다가 피눈물 흘렸죠? 인간 변하지 않죠? ㅋㅋ 아무튼 하프 때 거의 140에 근접했으니 18주 동안 몸상태 올리고 장거리 착실하게 하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변수가 있었다. 발바닥 앞꿈치가 아파서 7월 중순이 되어서야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아팠을 때에는 어 ㅡㅡ; 이거 ㅡㅡ; 설마 족저근막염은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족저근막염은 한 번 걸리면 너무 골치아픈 러너의 숙적이기 때문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변수 두 번째는 일이 너무 바빴다는 점이다. 올해 직장에서 담당하는 업무가 좀 확장되면서 야근이 늘었고 그래서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변수 세 번째는 ㅋㅋ 그 뭐냐 ㅋㅋ 이걸 변수라고 해야 하나? 상수 1번째라고 해야 할 듯 ㅋㅋ 내 게으름이다 ㅎㅎ ; 귀찮어서 훈련 제대로 안 함.. 

     

    그러다 보니 훈련량이 처참했다. 횡격막 부여잡으면서 이제는 정말 열심히 할 거야!!!!!!!!!!!!! 라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젖산역치 훈련을 딱 6번 했다. 18주 중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ㅋㅋ 빡런이 막상 하면 재밌는데 하기 전에는 엄두가 잘 안 나서 문제다.

     

    그리고 LSD는.. 여름이었어서 그런가.. 인자약인가.. 하녀튼 하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탈진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25km 하려다가 딱 하프 거리만 채우고 탈진해서 벤치에 누워 있는다든가.. 집에 와서 포카리밖에 못 먹는 경우가 많아서 살은 엄청 빠지긴 했다 ㅋㅋ 아무튼 거리를 채우는 날이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30km 이상 LSD는 딱 두 번 성공했다. 30km, 35km. 근데 35km는 하다 보니 또 횡격막 아파 와서 25km 이후로 걷다 뛰다 하면서 억지로 거리 채웠다.. 제대로 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횡격막은 정말 내내 나를 괴롭혔다. 조선일보 서울하프 이전에는 달리다가 횡격막이 아픈 날이 거의 없었는데, 한 번 아파 보고 나니 몸이 재미가 들렸는지 빡뛰를 해도 횡격막이 아프고, LSD를 해도 횡격막이 아프고, 하여튼 몸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되어 버렸다 ㅋㅋ 대회날에도 이렇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을 좀 많이 했다.. 

     

    튠업 레이스로는 9월 17일에 슈퍼블루 마라톤, 9월 24일에 뉴발란스 RYW에 나갔다. 슈퍼블루 마라톤은 습도도 높고 너무 날씨가 더워서 겨우 1시간 44분대를 맞출 수 있었다. 반면 딱 1주일 차이였는데 뉴발 RYW는 너무 쾌적하고 좋았다. 목표였던 45분 언더는 실패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레이스를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변수. 대회 4주 전인 10월 8일, 서울달리기 하프가 마지막 튠업 레이스였다. 22년 서울달리기는 내가 처음 나갔던 대회여서 애착이 많이 있다. 10km 뛰고 나서 힘들어서 야.. 이만큼을 한 번 더 뛴다고? 하프 어케함 ㅋㅋ 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러던 내가 풀을 뛰게 된다니.. 감회가 새로웠고, 140 언더를 해서 뭔가 보여 주고 싶었다 ㅋㅋ 근데 ㅋㅋ

     

    그 전날부터 몸이 너무 안 좋은 것이다... 이거 감기 너무 심해서 대회 못 나갈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 잠들었고, 일어나 보니 도저히 대회에 못 나갈 컨디션이라는 판단에 그냥 집에 있었다. 월요일에 조금 괜찮아져서 출근했는데(한글날이었는데 너무 바빠서 출근함 ㅎㅎ ;), 자가 검사해 보니!!!!!!!!!!!!!!!!!!!!!!!!!!!!!!! 코로나인 것임 삐상!!!!!!!!!!!!!!!!!!!!!!! 

     

    결국 코로나 때문에 마지막 튠업 레이스도 잘 못하고 10월 마일리지가 떡락하는 문제 발생했다. 또 나는 그.. 대회가 그 자체로 중요하기도 하지만 나처럼 빡런을 잘 안 하는 자식에게는 하프 페이스로 길게 뛰는 게 그 자체로 엄청 중요한 젖산역치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회 전 가장 중요한 시점에 훈련을 못해 버리게 됨 ㅋㅋ

     

    자체 격리가 끝난 일요일은 대회가 3주 남은 시점이었는데, LSD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30km LSD를 도전했다가 20km가 되니 하체 근육통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뛸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ㅋㅋ 아니 코로나면 호흡기 질환이니까 좀 심장이 약해져야 할 것 같은데 하체 근육통이 왜 그렇게 심했지? 인체의 신비란.. 그리고 이거 끝까지 뭔가 회복이 덜 되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그 날 이후로는 깝싸지 않고 슬슬 테이퍼링이나 했고, 2주 전부터는 페이스주 중심으로 뛰었다. 1주 전에는 대회 페이스대로 14km를 뛰었는데 나름 제대로 뛸 수 있어서, 몸 상태가 어느 정도 올라왔다는 생각에 

     

    그래서 내 훈련량은 이렇게 되었다.. 뭐 막 엄청 적은 마일리지는 아니겠지만 계획했던 것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7월은 10일 정도 부상으로 날렸고, 8월, 9월은 일 때문에 바빠서 결국 월 마일리지 300은 달성 못함.. 10월은 코로나 때문에 망해서 200도 못 뛰었다 ㅋㅋ 

     

     

    1. 대회 당일

     

    내가 준비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상관없이 결국 대회날이 밝았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는 탄수화물 양을 좀 줄이고 단백질 비중을 높였고, 목요일부터는 무친놈처럼 탄수화물을 먹었는데 ㅋㅋ 이거 별로 안 좋은 듯 ㅋㅋ 앞으로는 무친놈처럼 먹지는 말고 약간 성격 특이하다 싶은 정도로만 탄수화물 먹어 줘야겠다. 그리고 대회 전날 피자 라지 한 판 시켜서 점심에 반 저녁에 반 먹었는데 이것도 내 몸에는 별로 안 맞는 듯.. 과식해서 컨디션 좀 안 좋았다 ㅎㅎ ; 

     

     

    다섯 시에 일어나서 화장실 가서 경량화 챌린지 했지만 실패함 ㅋㅋ 조짐이 뭔가 안 좋았다... 빠르게 면도하고 어제 사 놓은 카스테라 먹고 썬크림 바르고 옷 갈아입고 다섯시 반에 출발했다.

     

    지하철은 마라톤 참여하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특히 6호선은 너무 사람 많아서 콩나물처럼 낑겨서 가야 했다.. 아무튼 1시간 반 정도 걸려서 겨우 도착했다. 상암에 비가 개많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도착하니 다행히 비가 그쳐 있었다. 

     

     

    상암에서 시작하다 보니 jtbc 마라톤은 화장실도 부족하고 쉴 곳도 좀 부족한 편이다. 조깅 겨우겨우 하고 화장실도 겨우 갔다 오고 바쁘게 있었더니 시간이 금방 갔다.. 어느새 내 첫 풀코스가 시작되려고 했다 ㅋㅋ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첫 풀 코스였기에 제출할 기록이 없었고, 그래서 D조에 배정되었다. D조는 A, B, C조가 다 출발한 다음 조금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긴 기다림 끝에 출발 신호가 내려졌고, 내 첫 풀코스 마라톤의 시작이었다.

     

    2. 0~5km

     

     

    이번 레이스 전략은 초반 3km 정도는 km당 510페이스로 맞추고, 나머지는 500페이스로 맞추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서브 330은 못하는데, 비도 오고 습도도 높고 기온도 높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3시간 35분 안에만 들어오면 되지 뭐 ~ zz 하는 생각이었는데 ㅋㅋ 이몸 얼마나 오만했던 것인지 ㅋㅋ

     

    출발하고 나서는 예상했던 대로 엄청난 병목현상이 벌어졌다. 거의 홍콩 수준의 인구밀도라서 어떻게 뚫고 지나갈 수가 없었고, 그냥 가면 조깅 페이스로 근근히 이동하는 것이었다.. 아니 D조에서 출발해서 서브3 하는 사람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임 ㅋㅋ 점멸이라도 쓴것임..?  

     

    원래 목표는 킬로당 510 페이스로 맞추는 거였는데, 인도 침범하고 호카게를 꿈꾸는 사나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 피해 가면서 이동하면서도 겨우 520페이스를 맞출 수 있었다. 근데 뒷일을 생각해 보면 ㅋㅋ 그냥 인파에 몸을 맡기면서 천천히 가는 게 좋았을지도 ㅋㅋ

     

     

    3km 정도 뛰고 나니까 양화대교가 나왔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인파가 많이 줄어서 어느 정도 뛸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양화대교 노래 혼자 부르면서 지나갔다. 매일 집에 ㅋㅋ 나혼자 있었지 아버지는 ㅋㅋ 섹시 드라이버 ㅋㅋ 이때부터 500 페이스로 뛸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신나서 그런가 자꾸 페이스가 올라가는 나를 자제해야 했다.

     

    하지만 제 속도 낸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양화대교 지나서 노들로를 지나는 길에는(사실 나도 길 잘 모름 ㅋㅋ ㅈㅅ)  차선이 한 개밖에 없어서 또 다시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작년 10km 뛸 때에는 심술보가 출렁출렁했었는데 오늘은 매러싼이라서 그런가 페이스조절 오히려 좋아 ㅋㅋ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뛸 수 있었다. 사실 10km 뛸 때에는 이쯤에서 걷는 사람이 있어서 카오스였는데 아무래도 마라톤이라 보니 다들 뛰기는 해서 괜찮았던듯 ㅎㅎ ;  

     

    3. 6~19km

    6km부터는 병목현상 없이 마음놓고 뛸 수 있었다 ㅋㅋ 그런데 ㅋㅋ 이놈의 횡격막이 갑자기 살짝 아파 오기 시작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병목현상 때문에 개느리게 뛰었고 별로 뛰지도 않았는데 횡격막이 아파 온다고? 이거 진짜 좀 문제가 있는 듯.. 

     

    사실 짐작 가는 게 있는데, 어제 카보로딩한다고 깝싸면서 피자 한 판 과식한 게 좀.. 부담이 되어서... 이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ㅎㅎ... 아밈말구 ㅋㅋ 근데 심각한 건 아니라서 좀 깊은 호흡 몇 번 하니까 통증이 사라졌다 ㅋㅋ  

     

    그 다음 위기 : 바로 방광이었다 ㅋㅋ 이 몸은 물 좀 마셨다 싶으면 한 시간에 한번씩 WC를 가 줘야 하는 저주받은 방광의 사나이이다.. 그래서 대회 직전에 좀 화장실을 가고 싶었는데, 제마가 열리는 상암은 동마가 열리는 종로와는 달리 화장실을 찾기 쉽지 않아서(그리고 내가 D조인 것을 감안하지 않고 너무 일찍 조에 합류한 탓도 있음) 출발 40분 전에 마지막으로 장실을 갈 수 있었고.. 7km 정도 오니 아 이건 좀ㅋㅋ 무리겠는데 ㅋㅋ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

     

    왜냐면 초반인데 벌써부터 오줌 매려우면 나중에는 어캄... 마침 여의도 공원 옆을 지나고 있어서 큰 화장실이 보였고, 여기서 일찍 싸고 가벼워진 마음가짐으로 레이스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ㅋㅋ 그래서 화장실에 갔고.. 밖에서 왠지 화가 난 할머니의 소리를 들으며(민폐 스포츠를 즐겨서 ㅈㅅ ;) 방광 비우고 새사람이 되어서 새출발했다. 

     

    여의도쪽에서는 빗물 때문에 웅덩이가 엄청 많았던 기억이 난다. 웅덩일 흔들어 봐 ㅋㅋ 

     

     

    사진에 보이는 건 마포대교다. 이쯤 500페이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별로 부담도 없어서 자신감도 생겼다. 이렇게 쭉 밀다가 이제 35km쯤 되면 페이스 올리고, 그러면 어쩌면 서브 330도 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했다. 

     

    마포대교 넘어간 다음 애오개를 향하면서 업힐이 좀 있었는데 별로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업힐과 다운힐의 전략은 단순했는데, 좀 완만한 업힐이다 싶으면 페이스 10초 늦추고 급하다 싶으면 20초 늦추는 거였다. 아직 레이스 초반이라 그런가 힘이 남아 있었고, 뭐야 ㅋㅋ 사람들이 겁주더니 별 거 아니었잖음 ㅎㅎ ; 하면서 넘길 수 있었다 ㅋㅋ  

     

     

    14km 지나다 보니 시청이 나왔다. 상암에서 뛰기 시작해서 내가 이쪽에 오다니 ㅋㅋ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나오는 곳인데 이렇게 두 다리로 뛰어서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생경했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우중런을 좋아한다. 비를 맞으며 달리면 일단 시원하고, 일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감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인 것 같다 ㅋㅋ

     

    그렇게 서울 도심을 비를 맞으며 계속 달리다 보니 흥인지문이 나왔다. 지리를 잘 모르다 보니 뛸 때에는 이거 광화문인 줄 앎 ㅋㅋ ; 너무 즐거워서 이대로 계속 레이스가 지속되었으면 했다 ㅎㅎ ; 하지만 돌아보면 즐거웠던 건 딱 여기까지였다.  

     

     

    4. 20~25km

     

    처음 이상을 느꼈던 건 한 19~20km 정도였던 것 같다. 장딴지가 갑자기 좀 아픈 것이다.. 이전에 코로나 낫고 나서 30km 뛰려다가 20km 뛰고 ㅈㅈ쳤을 때 딱 그 느낌이었다.. 약간 억울했다. 아니 하프 때에는 450페이스로 21.1km 뛰었는데도 다리가 괜찮았는데, 500페이스보다 살짝 안 되게 뛰고 있는 지금 종아리가 아프다고..? 

     

    이렇게 빠르게 하체가 털린 이유가 뭐였을까? 첫째. 코로나 이후에 장거리 뛴다고 까불다가 생긴 대미지가 아직 회복이 안 되었던 것임.. 그게 3주 전이기는 했는데 그 이후로 몸상태 올리기 위해 꾸준히 훈련하면서, 조금만 훈련해도 장딴지가 쉽게 아파진다는 것을 발견했었다.. 그래서 좀 나름 관리한다고 훈련량을 좀 적게 가져갔었는데.. 그래도 이 애송이 장딴지는 만족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둘째. 젖은 노면. 레이스 초반부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새벽에 내린 비로 노면이 젖어 있었다. 노면이 젖어 있으면 바닥이 미끌리면서 하체에 부담이 많이 간다. 그래서 종아리가 나도 모르게 쉽게 털렸을 수  있다.. 

     

    셋째이자 가장 좀 큰 이유일 것으로 추정되는 것 : 그냥 훈련 부족임 ㅋㅋ 첫 풀코스에서 20km만 뛰고 다리가 잠기는 건 흔한 일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훈련이 좀 부족했던 건 마일리지만 봐도 나오는 팩트라서 다른 이유를 댈 것도 없다 ㅋㅋ 좀 열심히 할걸.. ㅎㅎ.. 

     

    종아리에 통증이 오다 보니 안간힘을 써도 페이스가 밀리기 시작했다. 500으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신 차려 보니 페이스는 510, 515고 그랬다. 의식적으로 밀어서 잠깐 동안 회복되더라도 어느새 시계 보면 다시 510 페이스. 안간힘을 써도 올릴 수 없어서 500 페이스를 포기하고 510에 맞추겠다고 생각했지만 510조차 내게는 벅찬 페이스였다. 

     

     

    이러던 와중에 큰 힘이 되었던 건 터널이었다 ㅋㅋ 마라톤 대회 국룰 : 터널에서는 사람들이 미친듯이 소리지름 ㅋㅋ 개털린 상태에서 터널 들어가서 화이팅 외쳤더니 좌우에서 사람들이 소리지르기 시작해서 재밌었다 ㅋㅋ 마치 "퍼스트 펭귄"인지 나발인지가 된 느낌이랄까 ㅎㅎ ; 웃겨서 좀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5. 26~35km

    종아리에 이어서 고관절에 햄스트링까지 아파 온다 ㅋㅋ 하체가 짖어도 레이스는 계속된다 ; 26km 지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는 광나루 업힐이 있었다. 근데 막상 뛰어 보니 생각보다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ㅋㅋ 나 의외로 업힐을 잘하는 건가? 별다른 업힐 훈련도 잘 안 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걱정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ㅋㅋ 사실 뭐.. 페이스가 워낙 내려가 있으니 업힐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기는 했다 ㅋㅋ ; 

     

    문제는 업힐이 아니었다. 인생사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죠? 업힐이 지나간 이후 천호대교 들어서기 직전에는 엄청 급격한 다운힐이 있었다. 이미 하체가 개박살난 상태에서 내리막길은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곤욕이었다.

     

    신음을 내면서 평지보다도 느린 페이스로 겨우 내려가고 나니 내 다리는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페이스는 걷잡을 수 없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515를 유지하던 페이스는 530이 되었고, 540이 되었고, 550이 되었다. 날이 시원해진 이후 컨디션 좋은 날 내 조깅 페이스가 550 정도 된다. 

     

    이쯤 되면 좋은 페이스고 기록이고 나발이고 그냥 조깅 속도로라도 달리는 게 문제가 된다. 달리는 상태를 유지하는 게 너무 부담이 되었다.. 장딴지, 고관절, 햄스트링이 계속 내 귓가에 속삭인다 ㅋㅋ 야 ㅋㅋ 이자식 돌았네 ㅋㅋ 이걸 계속한다고? ㅋㅋ 장난? ㅋㅋ

     

    그래도 32km가 지난 뒤부터는 계속 혼잣말을 하면서 버텼다. 10km밖에 안 남았죠? 10km 평소에는 개쉽게 뛰는 거리죠? EZ하게 쌉가능이지? 개쉽죠? ㅋㅋ 하체 개털린 상태에서 그렇게 계속 남은 거리 평소라면 락발라드 부르면서 개쉽게 뛸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현실을 부정하면서 달렸다 ㅋㅋ 

     

    내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 있다면 계속 달리는 것이었다. 사실 여기서 한 번 걸어 버리면 끝장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다리 완전 잠겨버릴까 봐.. 아무튼 기록이고 뭐고 다 놓아버린 당시에는 그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걷지 않고 레이스를 마무리하기(근데 7km 지점에서 화장실 가느라 한 번 이미 걸었는데..). 그렇게만 한다면 후회 없는 레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6. 36~42km

     

    하지만 ㅋㅋ 그러한 마지막 자존심? 35.5km 정도에서 오장원의 별처럼 떨어지다 ㅋㅋ 도저히 안되겠어서 200m만 걷기로 했다. 걷고 있으니 뭔가 엄청 처량했다.. 공기는 너무 좋고.. 주변에는 열심히 뛰는 사람.. 그리고 내 앞에는 걷는 사람들.. 시원한 날씨.. 시팔.. 나는 왜 그렇게 헛된 시간을..

     

    이때 200m만 걷자고 생각할 때, 워치상의 거리가 올라가는 게 너무 무서웠다. 남은 거리가 5km였다.. 평소라면 코파면서 너무 쉽게 달릴 수 있는 거리인데 왜 이렇게 이 날은 개부담스럽고 콘스탄티노플 성벽처럼 느껴졌는지 ㅎㅎ ;

     

    그래도 그거 조금 걸었다고 힘이 났다. 뛰어서 탄천교 지나고 코너 도는데 ㅋㅋ 아니 ㅋㅋ 엄청난 다운힐이 있고 맞은편에도 사람들이 뛰고 있는 것임.. 사람마다 다를 것 같은데 나는 이런 식의 반환점을 도는 코스가 있으면 왠지 사기가 꺾인다 ㅋㅋ 야.. 이 다운힐을 가고 나서도 저 만큼 또 뛰어야 하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ㅋㅋ

     

    다운힐을 뛰면서 속으로만 울었다 ㅋㅋ 나는 어른이니까 ㅋㅋ 주위에는 걷는 사람이 개많았다.. 나도 걷고 싶었지만 방금 걸었는데 또 걸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운힐 어떻게든 보내고 맥아리없이 반환점 돌고 나서, 38km 구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는 용기를 얻은 다음 ㅋㅋ 또 걸었다 ㅋㅋ 응원해 준 여러분 ㅈㅅ ; 사실 응원 없었으면 그 전에 걷고 싶었을 텐데 뭔가 사람 많은데 걷기 챙피해서, 인파 없어진 곳에서 걷기 시작함..

     

    이번에도 딱 200m만 걸었다. 그래도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38.5km 정도에서 걷기 시작했으니까 4km도 안 되게 남은 상황이었다. 다시 뛰기 시작하는데 옆에서 어떤 여성 러너분이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울면서까지 뛰는 거지.. 나도 지금 다리 개박살난 상태에서 이거 한다고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사서 고생을 하고 뛰는 거지.. 도대체 왜... 생각하면서 그냥 뛰었다. 나 달리기 왜 하지.. 

     

    그렇게 39km 지점이 왔고, 탄천 1교를 지났다. 이제 진짜 쉬팔 ㅋㅋ 얼마 안 남은 것임 ㅋㅋ 40km 지점이 되니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2km만 뛰면 되는데 ㅋㅋ 이거 진짜 개 EZ한 거리인데 지금 걸을 건지? 오히려 걷는 것보다 뛰어서 빨리 끝내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는 거리였다. 

     

    도착지 근처가 되니 응원의 소리가 엄청나게 많았다. 나는 왜 달리는 걸까.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은 내가 뭐라고 응원을 하지..? 이게 축하받을 일일까..? 다리 너무 아프다.. 왜 거리 안 줄지..? 하다가 41km 지점. 뛰고 있으니 어떤 젊은 여성분과 남성분 옆에서 뛰게 되었다.

     

    여성분이 아마 고수라서 페이스메이킹을 해 주신 것 같은데, 여성분이 개 힘차게 얼마 안 남았어! 1km!라고 해 주는 데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라스트 1K라고 계속 혼잣말로 되뇌이면서 안 움직이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내 생에 그렇게 긴 1km는 없었다.. 횡격막 부여잡고 달리던 조선일보 하프마라톤 1km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그 여성분이 600미! 600미! 라고 말해서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한참 뛰면서 뭐가 600미임 ㅋㅋ 왜 거리 안 줆 ;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코너가 나오는 것임 ㅋㅋ 코너를 지나니까 피니시라인이 보였다. 있는 힘껏 멋지게 들어가기 위해 모든 힘을 짜내서 스퍼트를 하지는 못하고 계속 뛰는 게 고작이었다 ㅋㅋ 200m 정도의 거리가 천천히 줄어들었고 ㅋㅋ 그리고 마침내 피니시라인을 넘을 수 있었다. 

     

     

     

    7. 레이스가 끝난 뒤

     

    영혼이 나간 상태로 자원봉사자들이 목에 메달 걸어 주는 것을 받았고.. 기념품들도 받았다. 발이 부어서 그런지 오른쪽 발등이 신발에 낑겨서 너무 아팠다 ㅋㅋ 조금 걷고 있으니까 장딴지와 고관절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데 아니 나 도대체 이 다리로 마지막에 어떻게 뛴 것임 ㅋㅋ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근데 ㅋㅋ 짐 맡기는 곳 왜 이렇게 먼 것임 ㅋㅋ 사람은 너무 많고.. 다리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만큼 길고.. 체감상 한 1km는 걸은 것 같았다 ㅋㅋ 그 왜 거리의 노인분들 왜 이렇게 화가 많이 난지 좀 알 수 있었다. 몸이 아프면 사람이 짜증이 난다.. 레이스보다도 집에 오는 게 더 힘들었다 ㅋㅋ 지하철 내려가는 계단이 올 때마다 왜 내 점멸과 텔포는 쿨인지... 세상을 저주했다..  

     

     

    이게 내 최종 기록이다. 330을 목표로 했지만 ㅋㅋ 이 정도의 사내였던 것이지요 ; 아무리 그래도 안철수의 개인 최고기록(3시간 46분)보다는 빨리 들어올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오만한 생각이었고 진짜 대단합니다 안철수.. 야.. 50대 후반에 처음 달리기 시작했다던데 어케 함 ㅋㅋ 

     

     

    날이 흐려서 GPS가 좀 이상하게 잡히기도 한 것 같고, 사람들 피해서 왔다갔다 하느라 거리는 좀 남들에 비해 한 200m 정도 길게 잡힌 것 같다. 하체 털린 이후로 심박수로는 매우 평온한 레이스를 펼칠 수 있었지만 ㅋㅋ 하여튼 근육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근지구력은 강하다고 생각했던 거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ㅋㅋ

     

    구간별 기록 보면 얼마나 처절한 레이스를 했는지가 보인다. 500으로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630 됨 ㅋㅋ

     

    마라톤을 뛰고 난 직후에는 달리기.. 시팔.. 왜 하지..? 그렇게 잘하지도 못하고.. 뭐 즐거운 것도 아니고... 아프고.. 힘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 등록해 놓은 내년 3월 동마를 취소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마라톤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 인생을 걸고 하는 거지?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ㅋㅋ 땅콩크림 소보로빵은 나오지만 ㅎㅎ ; 

     

    딱 세 시간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다음 마라톤은 어떻게 준비하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달렸고 어떤 걸 느꼈는지 찾아보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마라톤을 뛰기로 한 데에는 궁금증이 크게 작용했다. 왜 마라톤을 뛰고 난 사람들은 저렇게 벅차오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걸까? 솔직히 뛸 때엔 그 벅참을 별로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벅참이고 옘병이고를 느낄 틈이 없었다..

     

    하지만어쩐지 그날 같이 뛴 사람들의 영상이나, 글을 볼 때면 나도 그와 같은 벅참을 느끼며 그날을 돌아보게 된다. 바람이 시원했던 양화대교, 마포대교, 천호대교 등. 도로에 크게 자리잡은 빗물 웅덩이, 강한 바람을 받아 아플 정도로 얼굴에 쏟아지던 빗방울, 종로 도심의 풍경들, 시각적으로 나를 압도했던 거대한 광나루 업힐, 걸을 때 유난히 시원했던 바람, 야속할 정도로 느리게 나오던 32km 이후의 거리 표지판들, 날 좌절하게 만들었던 수서동의 반환점, 그리고 피니시라인 근처의 유난히 시끄러웠던 응원소리, 600미! 600미!라고 외치던 소리 등. 모두 내가 두 발로 뛰면서 감각한 기억들이다.

     

    나는 왜 굳이 마라톤을 달릴까? 그 벅참은 뭘까? 뭔가를 도전하고 이루는 데서 오는 본능적인 성취감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아니면 달리기한다고 하면 주위에서 흔히 물어보는 러너스하이와 관련되는 걸까? 고통에서 오는 양면적인 희열 같은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ㅋㅋ ㅈㅅ

     

    하지만 그건 안다. 수많은 러너, 응원해 주는 사람들과 같은 순간을 공유할 것이고, 이 순간을 떠올릴 때면 가슴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몽글몽글하고 벅찬 감동이 올라올 것이라는 것. 다음 마라톤에서는 덜 고통스럽게 뛰어서 이 감동을 뛰는 중간에도 좀 느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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